뉴시스
“기시다 총리로는 다음 선거를 치를 수 없다.”
“빨리 기시다 정권이 무너지는 게 자민당에 차라리 좋다.”
최근 일본 집권 자민당 안팎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를 둘러싸고 공공연히 오간 말들이다.
이제 일본 정계 관심은 차기 총리가 누가 되느냐로 쏠린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고노 다로(河野太郞) 디지털상,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간사장 등 자민당 내 거물들이 여럿 거론되나 ‘뚜렷한 1강(强)’은 보이지 않아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된다. 이미 물밑에선 당내 세력 간 협상과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9월 말 치러질 자민당 총재 선거 일정은 이달 중 결정된다.
● 파벌 비자금 추문에 ‘백기’
기시다 총리는 미흡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로 물러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뒤를 이어 취임했다. 취임 직후 국회 중의원(하원)을 해산해 치른 총선에서 자민당은 단독 과반(233석)을 훨씬 웃도는 261석을 획득, 탄탄한 정권 기반을 다졌다. 2022년 7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피살 후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황금의 3년’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때가 정점이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후 자민당과 가정연합의 오랜 관계, 특히 주요 각료 및 당 간부의 유착 사실이 드러났다. 기시다 총리는 당내 보수 강경파를 의식해 여론과 동떨어진 채 무리하게 아베 전 총리 장례식을 국장(國葬)으로 밀어붙였다. 지지율은 30%대 밑으로 떨어졌다.
한일 관계 개선, 지역구인 히로시마에서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최 등으로 잠시 지지율을 회복했지만 오래 못 갔다. 기시다 총리 장남 쇼타로의 총리 공관 송년회 개최, 일본판 주민등록증으로 불리는 ‘마이넘버 카드’의 개인정보 부실 관리 등 악재가 이어졌다.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며 자민당은 올 4월 중의원 보궐선거 3곳에서 전패했다. 주요 지방선거에서도 패하면서 기시다 총리는 고립무원에 빠졌다. 당내에서 ‘총리 교체론’이 부상했다.
지난달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74%는 “기시다 총리의 연임을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결국 기시다 총리는 지지율 반등 기회를 만들지 못한 채 당 총재 선거 1개월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4일로 재임 1046일,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역대 8번째로 오래 재임한 총리라는 기록은 남겼다.
● “한일 관계 개선” 치적 강조
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했다”고 강조했다. 향후 과제로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으로 한일 관계 정상화를 더욱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물러나는 자리에서도 한일 관계 중요성을 언급하며 자신의 치적으로 꼽았다.
다만 역사 인식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 태도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자민당은 2000년대 들어 줄곧 역사 문제에서 우경화 행보를 보여왔다. 특히 2015년 아베 전 총리가 ‘미래 세대에 과거사를 사과할 숙명을 지게 하지 않겠다’는 ‘아베 담화’를 발표한 후 이런 움직임은 정책으로 고착화됐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최근 주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에 오른 이시바 전 간사장, 고노 디지털상, 모테기 간사장 외에도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전 환경상,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경제안보 담당상,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 의원 등이 꼽힌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당 선거다. 국민적 인기와 무관하게 당내 역학 관계에 따라 승부가 갈릴 때가 많다. 최근 당내에서는 ‘킹 메이커’로 꼽히는 아소 다로(麻生太郎) 전 총리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