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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현장 1m 옆에 민가… 고효율 ‘강널말뚝 공법’으로 착착

입력 | 2024-08-16 03:00:00

[달라진 해외 건설수주] 〈5〉 DL이앤씨의 필리핀 프로젝트
숱한 난관속 철도 건설 현장
땅 보상 늦어져 현장에 민가 즐비… 순발력 발휘 공법 변경해 속도전
다른 곳서 구조물 미리 만들기도… 공기 4년 지연, 공사비 증액 협상



8일(현지 시간) DL이앤씨의 필리핀 ‘말로로스∼클라크 철도 프로젝트(MCRP)’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토지 수용이 지연되며 민가와 1m 거리에 인접한 곳이 많다. 회사 측은 좁은 현장에서의 시공을 위해 기존 공법 대신 강널말뚝 공법으로 변경했다. 산페르난도=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8일(현지 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2시간 30분을 달리자 팜팡가주 산페르난도에 위치한 ‘말로로스∼클라크 철도 프로젝트(MCRP)’ 현장에 도착했다. DL이앤씨가 2020년부터 스페인 건설사 악시오나와 합작법인을 꾸려 건설 중인 현장이다.

MCRP는 필리핀 서북 지역 클라크에서 동남쪽 칼람바까지 160㎞에 이르는 남북철도 건설 프로젝트(NSCR) 사업의 일부다. 약 53km에 달하는 MCRP의 총사업비는 약 61억 달러(약 8조2850억 원) 규모다. NSCR가 완료되면 현재 자동차로 3시간 이상 걸리는 클라크 국제공항∼마닐라 구간을 1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게 된다.

● 토지보상 지연에 공법 변경…노하우로 리스크 대응

DL이앤씨-악시오나 합작법인이 MCRP에서 맡은 구간은 약 16km, 사업비 7725억 원 규모다. 경제성장이 빠른 필리핀에서는 철도뿐 아니라 각종 인프라 사업이 진행 중이라 대형 수주 기회가 많다. 하지만 선진국 대비 예상치 못했던 사업 리스크가 빈번히 발생하는 만큼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대응하고 사업성을 지키는 것이 관건이다.

MCRP 내 산페르난도역 공사 현장의 남북으로는 민가가 줄지어 있었다. 공사 현장과 민가가 가까운 곳은 거리가 3m도 채 되지 않았다. 철도가 이어져야 하는 곳의 동쪽으로는 민가촌이, 서쪽으로는 공원이 가로막는 등 공사 현장이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

그 이유는 필리핀 정부가 토지를 제때 넘겨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상 국내에선 토지보상이 끝난 뒤 공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토지 보상과 공사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공사가 시작됐는데도 민가가 떠나지 않은 것이다. NSCR 구간 전체에 남아 있는 민가는 총 1만3611채. DL이앤씨의 공사 구역에서도 당장 공사가 불가능한 구역이 절반 이상이다. 이에 완공 시점도 사업 초기 2024년에서 현재 2028년까지 4년 이상 미뤄졌다.

DL이앤씨는 공사가 지연되는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공사 계획을 바꿨다. 통상 철도 공사는 시작점부터 끝점까지 순차적으로 이어 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DL은 이미 설치한 크레인을 공사가 가능한 현장으로 옮기고 교각 구조물을 미리 만들어 놓는 방식을 선택했다. 크레인 분해 후 재조립까지 1개월 반 정도가 걸리고, 향후 이 구조물을 다시 운반해야 하지만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남정민 DL이앤씨 현장 부소장은 “대기비용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최소화하기 위해 크레인을 분해 및 재조립해 민가로 가로막힌 구간을 뛰어넘는 방안을 발주처에 제안했다”며 “시공사와 발주처 모두 윈윈하는 전략임을 강조해 설계 변경을 승인받았다”고 말했다.

시공법도 변경했다. 당초에 구상한 공법은 굴착을 위해 주변에 넓은 부지가 필요한 사면 개착 방식이었다. 애초 계약에선 30m 폭의 부지를 넘겨받기로 했지만 부지 인도 작업이 늦어지면서 민가와 현장 간 거리가 1m도 채 되지 않는 곳도 많았다. 이에 철제 말뚝을 땅에 박는 강널말뚝 공법으로 변경했다. 흙막이 벽을 형성하고 좁은 공간에서도 지반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다.

● 공사비 증액 협상으로 수익성 보전

공사기간이 4년이나 늘어나면서 공사비가 늘어나고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DL이앤씨는 현지 정부와 공사비 증액 협상을 진행했다.

필리핀 정부는 선진국에 비해 해외 건설사와 국제계약법상의 공사비 등 이슈를 다뤄본 경험이 적은 상황이었다. 이에 DL이앤씨 측은 국제계약 관련 경험이 많은 직원들을 전면에 배치해 국제계약법상의 분쟁조정위원회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또 법률 컨설턴트 등을 고용해 공기 지연에 따른 보상 산정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4월 필리핀 정부와 2027년 3월까지 공사 기간 지연에 따른 공사비 증액에 대한 1차 합의를 마쳤다. 추가 지연분에 대한 공사비 증액 협상이 현재 진행 중이다.

필리핀 정부는 현재 ‘빌드 베터 모어(Build Better More·BBM)’라는 인프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향후 필리핀에서 더 많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내년 초까지 바탄과 카비테 지역을 연결하는 해상 교량(26억 달러), 라구나 호반 고속도로·제방(23억 달러) 등 3조 원대 사업 입찰이 예정돼 있다.

MCRP 사업은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행정부가 시작한 ‘BBB(Build, Build, Build)’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두테르테 행정부에서는 2016∼2022년 4만80km 길이의 도로와 6854개의 다리를 건설하거나 확장한 바 있다. KOTRA에 따르면 필리핀 내 건설 인프라 부문의 성장은 2031년까지 연평균 8.2%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건설업계에서는 동남아 시장의 수익성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남아 수주전에서도 최근 가격보다는 기술이 중요시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입찰 금액은 높아지는 반면 수준 높은 인력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필리핀 수도권 비농업부문의 일일최저임금은 645페소(약 1만5591원)다. DL이앤씨 관계자는 “필리핀 현지 인부의 숙련도가 국내 대비 70% 정도는 된다.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숙련도를 상쇄하고 있다”며 “엔지니어급 인력도 풍부한 편”이라고 말했다.



산페르난도=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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