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묘앞역 ‘동묘닭칼국수’의 백숙닭칼국수(위 사진)와 초계냉면. 김도언 소설가 제공
종로에서 동대문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동묘벼룩시장은 서울, 아니 대한민국 구제 물품의 집합소로 명성이 자자하다. 의류, 신발, 모자 등 철 지나 오히려 고풍을 얻은 패션용품부터 고가구, 시계, 미싱, 전화기 같은 추억을 자아내는 생활용품, LP와 앰프, 턴테이블 같은 음향기기까지 시대별, 주제별로 없는 것이 없다. 신설동에 들어선 서울풍물시장까지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세월 구경, 시간 여행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시간 여행에도 시간이 쓰인다는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김도언 소설가
아무튼 사람들이 모이는 동묘벼룩시장에는 서민들을 위한 먹거리도 풍부하다. 어묵이나 떡볶이 같은 주전부리에다 칼국수나 짜장면 같은 간단식, 갈비탕이나 순대국밥처럼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단품 음식을 다루는 집들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다.
이처럼 착한 가게가 벼룩시장이 있는 동묘에 들어선 것은 필연일까 우연일까. 나는 당연히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동묘닭칼국수집을 포함해 모든 노포는 필연이라는 운명성을 가지면서 특정한 공간과 결합한다. 이걸 조금만 더 파고들면 노포의 사회학이 만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옛것, 촌스럽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것들, 낡아서 날이 빠진 것들, 모서리가 닳고 힘이 빠진 것들은 죄다 한곳에 모이는 것일까. 그게 세상 이치일까. 동묘벼룩시장에는 여전히 붙잡을 수 없는 시간에 취한, 다소간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값싼 음식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삶을 반추하는 곳이다. 현실에서 패배한 자들의 깊이 모를 허기를 착한 가격에 달래 주는 식당은 그래서 축복이다. 그런데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오해하지 마시기를. 이 집의 식객들 모두가 루저라는 말은 아니니까. 이 집 단골인 나 자신을 사례로 들자면, 나는 루저도 아니고 위너도 아니고 다만 ‘밥은 먹고 다니는 사람’일 뿐이다.
김도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