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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정소연]경찰까지 파고든 ‘집게손 음모론’

입력 | 2024-08-15 23:18:00

게임사 홍보물 ‘집게손’에 “남성혐오” 주장
일부 남성들, 엉뚱한 여성 신상 털고 모욕
불송치했던 경찰, 폭력 용인 논란에 재수사
성차별적 음모론 눈감았던 경위도 규명을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넥슨 집게손 사태’의 시작은 작년 11월이었다. 게임사 넥슨의 홍보 애니메이션에 인물이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집게손 모양을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것이 남성 혐오의 상징이라는 시비가 붙었다.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혐오하는 사상을 몰래 전파하기 위해 집게손 모양을 일부러 삽입했다는 음모론이 제기된 것이다.

이 음모론이 처음은 아니다. 이 음모론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기업, 정부 부처, 지자체의 광고나 동영상에서 집게손을 찾아내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해 왔다. 이 문제 제기는 소위 남초 커뮤니티에서 추동된 다량의 민원 제기, 기업에 대한 불매 호소, 관련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비방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애당초 집게손 모양이 은밀한 남성 혐오 상징이라는 주장부터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엄지와 검지로 무언가를 집는 동작은 어떤 상징이 되기에는 너무나 흔하다. 남성 혐오라는 개념이 실재하는지도 의문이다. 앨런 G 존슨을 비롯한 여러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남성을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여성의 ‘태도’는 존재하나, 그 본질은 여성 혐오적인 문화와 남성 중심 질서에 대한 분노이므로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가 동등한 대응항일 수는 없음을 지적해 왔다.

어쨌든 남성 혐오라는 현상은 있다고 치자.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혐오의 상징을 굳이 광고물 등에 몰래 삽입할 필요가 있는가? 남성 혐오의 존부와 집게손 음모론의 타당성 여부는 서로 관계가 없다. 솔직히 말해,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일수록 은밀한 혐오 상징을 몰래 삽입하는 수고까지 할 가능성보다는 아예 남성에게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싫어하는 존재를 위해 품을 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집게손 모양으로 남성 혐오가 강화되거나 전파될 것 같지도 않다. ‘남성이 꼴도 보기 싫은 마음’은 가정 내에서의 아들딸 차별, 누적된 성추행 피해(한국 사회에서 성추행을 겪지 않은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겪은 취업, 급여, 승진 등의 불평등,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교제폭력 등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체득된다. 전파나 세뇌의 결과가 아니다. 집게손 모양을 보고 ‘아, 저기도 나 같은 남성 혐오자가 있구나’ 하고 은밀히 기뻐하는 일도, 집게손 모양을 통해 남성 혐오를 전파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 성차별적인 사회에서는 굳이 그런 음모를 꾸밀 필요가 없다. 그렇게까지 애써 확인하지 않아도, 모든 여성에게는 차별의 피해자 동지끼리 공감이 가능하리라는 집단적이고 암묵적인 믿음이 있다.

그럼에도 넥슨 애니메이션에서 집게손 모양을 발견한 남성들은 이 집게손 모양을 한 여성이 그렸다고 추정하고(실제로 이 애니메이션을 그린 사람은 40대 남성이었다), 이 여성 피해자의 신상을 유포하고, 피해자에게 모욕적인 메시지를 발송하고 인터넷에 수없이 많은 인권 침해적인 글을 게시하였다. 날벼락을 맞은 피해자는 특히 심한 가해자들을 명예훼손, 모욕,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으로 서초경찰서에 고소하였다.

그러나 서초경찰서는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자체 종결하였다. 집게손 모양이 ‘금기시되는 것이 현재의 풍토’이고, 가해자들은 ‘작업물에 몰래 집게손가락 표현을 넣는 극렬한 페미니스트의 부적절한 행위’에 의견을 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서초경찰서는 피해자가 예전에 페미니스트에게 동조한 적이 있으니 가해자들의 피해자 비판에 ‘논리적 귀결이 인정된다’고까지 썼다.

집게손 음모론자가 있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달 착륙 조작설도 아직도 믿는 사람이 있는 마당이니 어떡하겠나. 그렇지만 경찰이 그 음모론의 논리를 채택해 공권력의 불행사를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심각한 문제다. 서초경찰서는 존부가 불확실한 집게손 음모론과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가치판단을 전제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 불송치 결정은 부적절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성차별적 가해행위다. 수사기관이 반사회적 음모론을 수용하고 이를 근거로 결론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너무나 위험하기도 하다. 경찰의 임무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인데, 서초경찰서의 이번 결정은 피해자의 행적과 가해자의 정당성을 연결 지어 온라인에서의 반여성적 폭력행위를 용인한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수많은 시민들의 항의와 검찰의 재수사 요청으로 해당 사건은 재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같은 경찰서가 재수사하는 만큼, 공권력이 성차별적, 음모론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애당초 대체 어떻게 수사기관이 성차별적 음모론을 채택하였는지도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