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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근무’ 환경미화원들, 범죄-교통사고 무방비 노출

입력 | 2024-08-16 03:00:00

인적 드문 새벽, 취객 시비 잦고
도로 치우는 사이 덤프트럭 씽씽
사망-부상 등 산재 작년 6439명
‘2인1조’ 근무는 예산 탓 뒷전 밀려





“왜 내 물건 훔쳐 이 도둑×아. 죽여버린다.”

지난달 8일 새벽 경기도의 한 지하철역 인근 인도. 환경미화원으로 혼자 쓰레기를 치우던 50대 여성 김영숙(가명) 씨의 손을 한 취객이 강하게 잡아채며 이렇게 말했다. 벤치에 엎드려 자던 취객 옆에 있던 맥주병과 과자 봉지를 김 씨가 치우자 대뜸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이 취객은 꼬인 혀로 침을 튀겨가며 연신 김 씨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놀란 김 씨가 “뭐 하는 짓이냐”며 손을 뿌리치자 취객은 더 흥분해 고성을 질러댔다. 마침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으로 위험을 모면했지만, 행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더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환경미화원들

이달 2일 오전 5시 10분경에는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지하보도에서 청소를 하던 6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당하는 등 환경미화원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늦은 밤이나 새벽 등 인적이 드문 시간 홀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은 탓에 범죄는 물론이고, 교통사고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의왕시에서 20년 동안 환경미화원으로 일해 온 손재선 씨(56)는 “외딴곳에서 낯선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경우도 많다”며 “혼자서 일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하기 마련”이라고 토로했다.

12일 오전 동아일보 취재팀이 손 씨와 동행하며 근무 현장을 확인한 결과 ‘안전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지 않은 으슥한 골목 안쪽까지 들어가 쓰레기를 수집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져 자칫 범죄에 노출될 수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손 씨의 등 뒤로 덤프트럭이 쌩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덤프트럭과 손 씨의 간격은 채 1m도 되지 않았다. 손 씨는 “혼자 일하는데 눈이 뒤통수에 달린 게 아니니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일하다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환경미화원은 최근 5년 새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근무 중 사망 또는 부상을 당해 산업재해가 인정된 환경미화원은 2019년 5078명, 2020년 5136명, 2021년 5627명, 2022년 5859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지난해엔 6439명까지 늘어났고, 올 1∼6월에도 3127명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

● “‘2인 1조’ 근무해야 안전”

환경미화원들은 적어도 도로에서 일할 때나 인적이 드문 시간만이라도 ‘2인 1조’로 근무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인 1조로 일하면 차량이 지나갈 때 서로 “조심하라”고 알려줄 수 있고, 범죄 대응력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고용하는 공무직이나 청소용역업체 모두 예산과 비용 등을 이유로 2인 1조 근무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지자체 공무직 노조 관계자는 “환경미화원들에게 1km가 넘는 골목의 청소를 ‘혼자서 오전 중에 모두 끝내놓아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자체나 용역업체 모두 안전 비용을 추가로 부담할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근로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용역 방식의 경우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있어 2인 1조는커녕 있는 인원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먼저 나서 ‘2인 1조’를 기준으로 제시하는 한편 기준에 부합하는 업체가 낙찰되는 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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