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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전업체에 굴욕 안긴 비운의 게임기, 3DO [조영준의 게임 인더스트리]

입력 | 2024-08-16 10:00:00


금성(현 LG), 파나소닉, 산요전기,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 AT&T 등 1980~90년대에 세상을 호령하던 가전업체들이 있습니다. 이들 글로벌 가전업체들은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등 다양한 가전제품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죠. 글로벌 버블 시대를 맞이하여 이들 가전업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을 내놓았고, 수백, 수천억 원의 매출을 일으키며 전 세계 가전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전업체들에게도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정용 비디오 게임 시장을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죠. 당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크게 닌텐도의 슈퍼패미콤과 세가의 메가드라이브로 양분되는 모습이었는데요, 당장 닌텐도 슈퍼패미콤의 글로벌 판매량이 4900만 대, 메가드라이브가 2950만 대에 이르는 데다 여기서 나오는 수많은 게임들의 라이센스비까지 더하면 가정용 게임 시장은 웬만한 가전제품을 능가하는 큰 규모의 시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 가전업체들은 이 매력적인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그냥 둘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땅한 노하우와 계기가 없었을 뿐, 기회만 주어진다면 당장이라도뛰어들고 싶어했죠.


3DO로고. 출처: 게임동아 DB

그런 가운데 EA의 창업자 트립 호킨스(Trip Hawkins)가 3DO 컴퍼니를 창업하면서 글로벌 가전업체들에게도 기회가 오게 됩니다. 당시에는 16비트 기반인 슈퍼패미콤과 메가드라이브의 수명이 끝나가고, 32비트 프로세서와 대용량 CD 매체를 포함한 차세대 게임기에 대한열망이 부풀어 오르는 즈음이었죠. 오락실에서도 세가가 본격적인 3D 시대를 알리고 있었고,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도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3DO 컴퍼니는 마쓰시타 전산, 금성사, 산요전기,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 AT&T와 같은 여러 회사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가정용 게임시장 진입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가 새턴과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하기 전인 1993년에 가장 빠르게 차세대 게임기 3DO를 출시하게 됩니다.


93년에파나소닉에서 출시한 3DO 리얼. 출처: 게임동아 DB

그렇게 처음 차세대기의 포문을 연 3DO는 기존의 게임기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무려 1670만 컬러를 지원했으며, 종전보다 훨씬 고해상도인 640X480의 해상도를 지원했습니다. 또 두 개의 코프로세서를 통해 6400만 픽셀의 처리가 가능했죠. 때문에 게임도 기존의 게임기에서 볼 수 없었던 실사형 게임이나, 기존 오락실 액션 게임의 완전 이식 버전도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첫 차세대 게임기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3DO의 특이했던 점은 3DO가 단순 게임기가 아니라 차세대 멀티미디어를 표방했다는 점입니다. 3DO는 기본 매체로 CD를 채용한 만큼 비디오와 DVD 중간에 영상 시장까지 장악하겠다는의도를 보였습니다.

1993년 시작과 동시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3DO는 일본은 물론 북미 시장에서도 인상적이라는 반응을 얻게 됩니다. 판매량도 괜찮아서 글로벌 가전업체들의 가정용 게임기 진입 시도는 첫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는 되었죠. 하지만 출시 초반의 반짝 판매 이후, 3DO는 판매량이 크게 추락하며 가전업체들을 당황시키게 됩니다. 700달러(한화 약 95만 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이 발목을 잡았던 것입니다.


골드스타에서내놓았던 3DO. 출처: 게임동아 DB

당시 3DO 측에서는 자신들이 직접 기기를 제조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나 라이센스를 주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형 표준 방식 플랫폼으로 만들었는데요, 누구나 표준만 지키면 3DO를 만들 수 있었기에 수많은 가전업체들이 저마다 다른 디자인으로 3DO를 만들어냈습니다.

가격이 비쌌던 이유는 게임의 판매 수익이 이들 가전업체에게 한 푼도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롯이 하드웨어 판매로 가전업체들이 수익을 봐야 했기에 3DO 가격이 타 게임기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는 세가나 소니, 닌텐도가 원가보다 낮게 하드웨어를 풀고, 소프트웨어 이익으로 이를 상쇄했던 방식에 비해 큰 약점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판매량이 주춤하게 되니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이 점점 참여를 꺼리게 되고, 좋은 게임들이 없으니 이용자들이 외면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세가와 소니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을 내놓으면서 3DO는 경쟁력을 완전히 잃게 되고 말죠.

때문에 1993년에 전 세계 가전업체들이 야심차게 출시하여 포문을 열었던 3DO는 불과 3년 뒤인 1996년에 모든 개발을 포기하게 되고, 엄청난 적자를 떠안은 3DO사는 부도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에 참여했던 수많은 가전업체들도 이때 엄청난 타격을 입었음은 두말할 필요가없겠습니다.


1990년대게임잡지에 실린 이정재 골드스타 3DO 광고. 출처: comandgame.tistory.com

그러면 국내 상황은 어땠을까요? 국내에서는 금성(현 LG)이 3DO 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며 가정용 게임기 시장 장악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금성은 인기 배우 이정재 씨를 동원하여 TV 광고를 하면서 제품 홍보에 앞장섰는데요.

“와, 이게 영화야 게임이야?”라는 이정재 배우의 광고 멘트는 지금도 차세대 게임기의 시작을 알렸던 그 시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비록 국내에서도 3DO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망하고 말았지만, 유명 배우에 성우까지 동원하며 한글화에 노력했던 금성의 노력은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