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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과거제도’가 떠받친 中 체제, 끝까지 건재할까

입력 | 2024-08-17 01:40:00

1인 통치 가능케 한 메커니즘 분석… 수나라부터 이어진 과거시험 주목
권위 의존하는 정신적 습관 양산… 부적합 인재 걸러내는 수단으로
성장 이뤘지만 체제 지속 땐 위험… 정치-사회 다원화 방향으로 가야
◇중국필패/야성 황 지음·박누리 옮김/624쪽·3만2000원·생각의힘



지난해 치러진 중국의 대학 입학시험인 ‘가오카오(高考)’ 수험생들이 중국 베이징의 한 수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저자는 수나라 때부터 시작된 ‘과거제도’가 중국에서 가오카오로 명맥을 이어오며 “가치, 규범, 사유의 인큐베이터가 됐다”고 설명한다. 베이징=AP 뉴시스



“특권 대신 평등, 통제 대신 자유, 거짓말 대신 존엄, 문화혁명 대신 개혁, 지도자 대신 투표, 노예 대신 시민을 원한다.”

지난달 31일 중국 후난성 신화현의 대로 위 육교에 한 남성이 이 같은 문구가 담긴 정부 비판 현수막을 내걸었다. “독재자이자 ‘나라의 역적’ 시진핑 주석을 파면하자”는 구호의 현수막도 근처에 걸렸다. 대만 중앙통신은 “사회질서 유지 명분으로 시민사회를 탄압하는 정부에 대항해 전국적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계 미국인 경영학자로 수나라부터 현 공산당 체제까지 중국의 통치구조를 분석한 저자는 이런 중국 내 반발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1인 통치구조가 1000년 이상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반(反)정부 현수막을 찍은 사진이 한때 중국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빠르게 확산됐지만, 이내 정부의 차단 조치에 막혀 잠잠해졌다.

2022년 11월 중국의 강력한 코로나19 통제 정책인 ‘제로 코로나’에 항의해 전국적인 운동인 ‘백지 시위’가 발생했다. 저자는 “민주화의 물결은 중국의 해안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정치 체제는 북한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고 짚었다. 베이징=AP 뉴시스 

저자는 중국의 장구한 통치체제를 과거제(Examination), 독재(Autocracy), 안정(Stability), 기술(Technology)의 네 가지 키워드로 분석하고 있다. 각 단어의 첫 알파벳을 따 ‘EAST’로 명명하고 있는데, 책 원제가 ‘EAST의 성공과 몰락’인 이유다. 국내 번역서의 도발적인 제목인 ‘중국필패’보다는 중국 사회의 명암을 고루 짚는다는 점에서 원제가 더 적확하다는 생각도 든다.

1960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중국 경제사 통계와 사례 등을 서유럽 등과 비교한다. 이를 통해 중국의 정치, 경제체제가 다른 국가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실증적으로 짚는다. 특히 수나라에서 처음 도입돼 지금도 ‘가오카오(高考·중국 대학수학능력시험)’란 이름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과거시험 관련 내용이 흥미롭게 읽힌다.

과거는 인재를 선발하는 동시에 “정답과 가치 정렬을 위해 권위에 의존하고 숭앙하는 정신적 습관을 만들었다.” 집권자가 보기에 부적합한 인사를 배제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였다. 특히 고도로 형식화된 과거시험은 관료집단을 동질화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과거제의 이런 기능은 중국 경제에서 정부가 민간을 이끄는 ‘수직적 자본주의’로 이어졌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반면 과거시험의 순기능도 있었다. 문(文)과 충(忠)의 가치가 미덕으로 간주되면서 엘리트층의 내분으로 정권이 파멸에 이르는 위험을 낮춰 장기간 정치적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서구 유럽에 비해 중국 내 통일 왕조의 수명이 비교적 오래 지속된 이유다.

중앙집권적 통일 왕조가 면면히 내려온 중국사에서 여러 나라들이 난립한 위진남북조(220∼581년) 시대는 가장 흥미로운 시대로 꼽힌다. 분열과 전쟁이 이어졌지만, 어느 때보다 다원화된 욕구가 분출했으며 중국의 기술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시기였다는 것.

저자는 현 중국 통치체제의 위험성을 비판하면서도 향후 중국 정치, 사회의 다원화를 전제로 중국 시스템의 회복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권위적인 ‘시황제 체제’가 지속된다면 미중 갈등과 맞물려 해피엔딩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