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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노예 농담, 아직도 씁쓸한 까닭

입력 | 2024-08-17 01:40:00

◇평등의 짧은 역사/토마 피케티 지음·전미연 옮김/324쪽·2만2000원·그러나





예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콘테스트 쇼프로그램인 ‘아메리카 갓 탤런트’를 볼 때였다. 아프리카 말라위 출신의 흑인 코미디언이 인류의 진보를 소재로 입담을 펼쳤는데, 그의 마지막 말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지금은) 여성들도 투표권을 갖게 됐고, 누구나 와이파이를 쓰고 있고… 200년 전이었으면 여기는 옥션(인터넷 경매 회사)이었을 겁니다.” 200년 전이라면 흑인이 무대 위에 서 있던 곳은 노예 시장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비유를 통해 평등을 향한 인류 진보를 유쾌하게 역설한 것이다. 그런데 인류가 진보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얼마만큼 진보한 것일까.

‘21세기의 마르크스’로 불린 토마 피케티가 그동안 자신이 쓴 책과 연구가 촉발한 다양한 논의를 되짚고, 불평등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보다 훨씬 간결하게 정리했다. 저자는 지금까지 인류가 평등을 향해 꾸준히 전진해 왔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단지 평등을 향해 전진해 왔다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불평등과 모순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불평등의 기원과 내용을 밝히고 새로운 방식으로 평등을 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서 우리는 1980년 이후 소득 격차가 확대된 원인 중 하나가 누진세의 고전에 있었음을 확인했다. 인센티브나 효율성을 이유로 내세워 이런 소득 격차를 정당화하기는 힘들다. 앞으로는 좀 더 강력한 누진세가 다시 도입돼야 임금 격차가 다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제7장 민주주의, 사회주의, 누진세 중)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특수한 시각 때문에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이 불편하게 느껴질 사람도 꽤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특정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했다고, 어떤 특정 이념이 쇠퇴했다고 그 안에 담긴 방법론까지 모두 다 ‘잘못된 것’으로 매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불평등을 줄일 정책은 꼭 필요하고, 그 출발점은 어떤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제시된 방법을 검토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한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