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양산 쓰니 체온 낮추고 자외선 차단 두통 사라지고 더 걷게 돼 혈당수치도 감소 日 ‘남성도 양산’ 캠페인 이후 문화 바뀌어 고령화 한국, 노인 건강 개선 효과도 기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일본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연휴가 연이어 있다. 일본에서는 이 기간을 황금 연휴라 부른다. 올해 황금 연휴 초입에 두통이 시작됐다. 집에 있는 진통제를 먹었는데 영 효과가 없었다. 평생에 그렇게 심한 두통은 처음 겪었다. 통증이 심할 때는 저절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싶어 겁이 덜컥 났다. 하필이면 황금 연휴 때라 병원도 문을 닫았는데 응급실에 가야 되나 고민하다가 인터넷을 뒤져 보니 뇌출혈 등 심각한 문제로 인한 증상은 아닌 것 같았다. 편두통이 심한 경우로, 진통제를 바꾸면 가라앉을 수 있다는 조언이 있었다.
일본은 약국이 편의점이나 슈퍼처럼 되어 있어서 휴일에도 문을 연다. 새로 사온 진통제를 먹었더니 신기하게 1시간 정도 지나 두통이 진정되었다.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새벽에 다시 두통으로 잠을 깼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깨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을 조금 먹고 진통제를 먹었더니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진통제로 버티다가 연휴가 끝나자마자 병원에 갔다. 의사가 권한 대로 뇌검사를 예약하고 며칠 뒤 검사를 받고 일주일 뒤 결과를 들으러 갔다. 그사이 두통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데, 대신 감기에 걸렸다. 30년을 같이 산 아내로부터 당신이 그렇게 심하게 기침하는 걸 처음 봤다는 말을 들었다. 감기는 일주일 정도 뒤에 나았는데, 그때부터는 속이 메슥거려서 밥을 먹기 힘들었다. 약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싶어, 두통약과 감기약뿐만 아니라 평소에 먹던 당뇨약도 끊었다.
뇌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날은 두통과 기침이 가라앉고,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의사는 내 나이 정도의 노화로 인한 문제는 보이지만 그렇게 심한 두통을 일으킬 만한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내 생활 습관을 고쳐 보라고 했다. 이번 두통은 눈이 피로해서 그런 걸 수 있다면서, 전철이나 버스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말라는 등 여러 가지 주의를 주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퇴근 때면 늘 눈이 따가웠다. 직업 탓에 컴퓨터 앞에서 작업할 때가 많은 데다가, 출퇴근 때 전철 안에서나 밤에 침대에서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 눈은 쉴 시간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남성들도 양산을 써야 한다는 캠페인이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양산을 쓴 남성을 종종 보게 된다. 캠페인에서 주장하는 양산의 가장 큰 이점은 여름 외출 시 온도를 낮춰 몸을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여름에는 길을 걸을 때 그늘을 찾아 걷는다. 그늘이 없는 길을 걸을 때면 짜증이 났다. 양산을 쓰면 내 머리 위에 계속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이니 이리저리 좋지 않을까? 용기를 내서 남성용 양산을 사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 근처에 가면 양산을 접어 가방에 숨겼다. 학생들이 볼까 겁나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캠퍼스에서 양산을 쓰고 다니는 남학생을 보았는데, 아무도 그 학생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캠퍼스에서도 그냥 양산을 쓴다.
생활습관을 바꿨더니 언짢게 남아 있던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신기하게 탈모도 조금 좋아진 것 같다. 자외선도 탈모의 원인 중 하나라 한다. 양산을 쓰고 다니니 그늘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돼 편하다. 조금 더 걸을 수 있어서인지 혈당 수치도 떨어졌다. 여름이 되면 걷는 게 힘들어서 짧은 거리도 버스나 택시를 타곤 했다. 지금은 양산이 있으니 조금 더 걷는다.
올해 환갑인 사람이 80세가 되는 20년 후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사회가 된다. 내 세대를 돌보는 것이 다음 세대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내 건강을 지키는 게 다음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양산을 쓰라고 권한다. 우리 건강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