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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칼럼]남성도 양산을 쓰자

입력 | 2024-08-16 23:12:00

폭염에 양산 쓰니 체온 낮추고 자외선 차단
두통 사라지고 더 걷게 돼 혈당수치도 감소
日 ‘남성도 양산’ 캠페인 이후 문화 바뀌어
고령화 한국, 노인 건강 개선 효과도 기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일본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연휴가 연이어 있다. 일본에서는 이 기간을 황금 연휴라 부른다. 올해 황금 연휴 초입에 두통이 시작됐다. 집에 있는 진통제를 먹었는데 영 효과가 없었다. 평생에 그렇게 심한 두통은 처음 겪었다. 통증이 심할 때는 저절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싶어 겁이 덜컥 났다. 하필이면 황금 연휴 때라 병원도 문을 닫았는데 응급실에 가야 되나 고민하다가 인터넷을 뒤져 보니 뇌출혈 등 심각한 문제로 인한 증상은 아닌 것 같았다. 편두통이 심한 경우로, 진통제를 바꾸면 가라앉을 수 있다는 조언이 있었다.

일본은 약국이 편의점이나 슈퍼처럼 되어 있어서 휴일에도 문을 연다. 새로 사온 진통제를 먹었더니 신기하게 1시간 정도 지나 두통이 진정되었다.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새벽에 다시 두통으로 잠을 깼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깨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을 조금 먹고 진통제를 먹었더니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진통제로 버티다가 연휴가 끝나자마자 병원에 갔다. 의사가 권한 대로 뇌검사를 예약하고 며칠 뒤 검사를 받고 일주일 뒤 결과를 들으러 갔다. 그사이 두통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데, 대신 감기에 걸렸다. 30년을 같이 산 아내로부터 당신이 그렇게 심하게 기침하는 걸 처음 봤다는 말을 들었다. 감기는 일주일 정도 뒤에 나았는데, 그때부터는 속이 메슥거려서 밥을 먹기 힘들었다. 약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싶어, 두통약과 감기약뿐만 아니라 평소에 먹던 당뇨약도 끊었다.

뇌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날은 두통과 기침이 가라앉고,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의사는 내 나이 정도의 노화로 인한 문제는 보이지만 그렇게 심한 두통을 일으킬 만한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내 생활 습관을 고쳐 보라고 했다. 이번 두통은 눈이 피로해서 그런 걸 수 있다면서, 전철이나 버스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말라는 등 여러 가지 주의를 주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퇴근 때면 늘 눈이 따가웠다. 직업 탓에 컴퓨터 앞에서 작업할 때가 많은 데다가, 출퇴근 때 전철 안에서나 밤에 침대에서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 눈은 쉴 시간이 없었다.

그날부터 컴퓨터 앞에 2시간 이상 앉아 있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 이 칼럼을 쓰다가도 2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고 쉬다 왔다. 쉬는 동안에는 눈을 감고 있거나 멀리 창밖을 본다. 전철 안에서는 이를 악물고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는다. 밤에는 스마트폰을 거실에서 충전한다. 그리고 자외선도 눈에 좋지 않다고 해서 외출 시에는 선글라스를 썼다. 그런데 선글라스가 불편할 때가 있어서 양산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산을 써도 자외선이 차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남성들도 양산을 써야 한다는 캠페인이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양산을 쓴 남성을 종종 보게 된다. 캠페인에서 주장하는 양산의 가장 큰 이점은 여름 외출 시 온도를 낮춰 몸을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여름에는 길을 걸을 때 그늘을 찾아 걷는다. 그늘이 없는 길을 걸을 때면 짜증이 났다. 양산을 쓰면 내 머리 위에 계속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이니 이리저리 좋지 않을까? 용기를 내서 남성용 양산을 사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 근처에 가면 양산을 접어 가방에 숨겼다. 학생들이 볼까 겁나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캠퍼스에서 양산을 쓰고 다니는 남학생을 보았는데, 아무도 그 학생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캠퍼스에서도 그냥 양산을 쓴다.

생활습관을 바꿨더니 언짢게 남아 있던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신기하게 탈모도 조금 좋아진 것 같다. 자외선도 탈모의 원인 중 하나라 한다. 양산을 쓰고 다니니 그늘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돼 편하다. 조금 더 걸을 수 있어서인지 혈당 수치도 떨어졌다. 여름이 되면 걷는 게 힘들어서 짧은 거리도 버스나 택시를 타곤 했다. 지금은 양산이 있으니 조금 더 걷는다.

올해 환갑인 사람이 80세가 되는 20년 후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사회가 된다. 내 세대를 돌보는 것이 다음 세대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내 건강을 지키는 게 다음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양산을 쓰라고 권한다. 우리 건강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자는 뜻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