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정책사회부장
10년 전 일본 대학에서 연수할 때 일이다. 방학을 이용해 자전거로 일본 열도를 종단하던 중 삿포로의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남성이 일본 내 혐한 보도를 토대로 한국 비판을 쏟아냈다. “혐한 보도는 극히 일부 사례를 과장한 것”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하자 “한국인의 생각과 행동을 언론에서만 접했는데 그게 획일적이고 틀에 박힌 것이었다”며 물러섰다. 또 “나중에 자전거를 같이 타자”고 제안했다.
그와는 여행 후 도쿄에 돌아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사이가 됐다. 지바에서 열린 200km 자전거 대회에도 함께 출전했는데 생소한 길을 그와 그의 지인이 자신의 기록을 신경 쓰지 않고 앞뒤로 에스코트해 줘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낯선 사람과 만나는 경험 사라져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경계하는 건 인간이 가진 ‘부족 본능’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가족 모임, 동창회, 회식, 학부모 모임 등에서 자의든 타의든 생각이 다른 사람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신문과 TV 뉴스에서도 찬반 의견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스마트폰과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낯선 사람과 대면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를 거치며 국민 다수가 비대면에 익숙해졌다. 신문과 TV의 자리를 유튜브 등이 상당 부분 대체하며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경향도 강해졌다.
그렇다면 낯선 사람을 안 만나는 게 좋을까. 2017년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은 통근 열차를 타는 시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탑승 전 대다수는 “낯선 사람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 혼자 가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 혼자 출근한 사람보다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라”는 지시를 받은 사람이 “출근 시간이 훨씬 즐거웠다”고 답했다.
극과 극도 만나면 통한다
같은 해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는 ‘독일이 말한다’ 기획을 시작했다. 온라인 설문조사를 거쳐 생각이 극과 극인 사람을 만나게 해 보자는 취지였다. 이 기획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난민과 극우주의자, 동성애자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서로를 상당 부분 이해하게 됐다는 후기를 남겼다. 디 차이트 편집장은 자신의 책 ‘혐오 없는 삶’에서 “많은 참가자가 싸움 등 극적인 걸 기대했지
만 실제 발견한 건 동의와 공감이었다”고 썼다.(동아일보도 2020년 ‘극과 극이 만나다’ 기획을 통해 생각이 다른 이들이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해 나가는 모습을 보도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 어느 한 극단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 다양한 스펙트럼상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 만나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10년 전 일본 남성이 필자를 만난 후 실제 한국인이 혐한 뉴스에 나오는 것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장원재 정책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