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형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 노화가 주원인, 최근 40대 환자 늘어… 초기 증세 거의 없어 병 키우기 쉬워 증세 나타나면 이미 말기, 실명 위험… 사물 구부러져 보이다 중심부 까맣게 암슬러 격자 검사-정기 눈 검진 필요… 금연-건강식단-운동이 최고 예방법
박규형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3대 실명질환인 황반변성을 단순히 노화에 따른 질병이라고 여기지 말고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박 교수는 수시로 황반변성 자가 진단을 하고 50세 이후에는 매년 눈 검진을 받을 것을 권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안상현(가명·55) 씨는 평소 건강에 자신 있었다. 운동도 자주 했다. 나이 들어 시력이 약간 떨어지기는 했지만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해외여행 중에 눈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해가 떠오르는 찰나 갑자기 풍경이 휘어져 보였다. 귀국하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곧바로 정밀 검사가 이뤄졌다. 양쪽 눈 모두 황반변성이라는 진단이 떨어졌다. 오른쪽 눈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떨어져 있었다. 왼쪽 눈도 이미 병이 꽤 진행돼 있었다.
안 씨의 치료를 담당한 박규형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안 씨의 오른쪽 눈 시력은 0.1이 되지 않았고, 왼쪽 눈도 0.5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안 씨는 거의 실명 상태다. 박 교수는 “만약 더 일찍 병을 발견했더라면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시력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안구의 안쪽에 얇고 투명한 막이 있다. 망막이다. 안구 안으로 들어온 빛 정보를 전기 정보로 전환해 뇌로 전달한다. 이 망막의 중심부에 있는 것이 황반이다. 녹황색 색소가 있어 노랗게 보이기 때문에 황반이란 이름이 붙었다. 황반변성은 드루젠이란 노폐물이 황반에 쌓이면서 시작된다. 노폐물 수가 많아지고 덩어리가 커지면서 황반에 밀집된 시세포들이 죽는다. 시세포는 빛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시세포가 죽기 시작하면 시력이 크게 떨어진다.
치료하지 않고 시간이 더 흐르면 황반에 비정상적인 혈관이 새로 생기기 시작한다. 이 혈관이 터져 출혈이 일어나고 흉터가 생긴다. 비정상적인 혈관이 생기기 전 단계를 건성 황반변성, 이후 단계를 습성 황반변성으로 구분한다. 대개는 건성에서 습성으로 악화한다. 습성 황반변성이 진행되면 실명의 위험도 커진다.
황반변성은 녹내장, 당뇨병성 망막증과 함께 3대 실명 질환이다. 황반변성의 경우 시야의 중심부를 보는 ‘중심 시력’이 0.1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주변부만 희미하게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되는 것.
황반변성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노화다. 최근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황반변성 유병률은 50대가 11%, 60대가 20%, 70대 이상이 31% 정도다. 나이가 들수록 유병률도 높아진다. 70대의 경우 10명 중 3명 이상이 황반변성 환자다. 박 교수는 “황반변성 환자 증가 속도가 무척 빠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약 2배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 초기엔 증세 거의 못 느껴
박 교수는 안 씨와 같은 사례를 황반변성 환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했다. 황반변성에 걸려도 초기 증세가 거의 없어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박 교수는 “한쪽 눈에서 황반변성이 진행되고 있어도 다른 쪽 눈의 시력이 살아있다면 병을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건성 황반변성일 때는 증세가 거의 나타나지 않아 병을 자각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심지어 초기에는 시력 자체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따로 검사하지 않는 한 병을 발견하기 어렵다. 시력은, 노폐물이 심하게 쌓이면서 망막이 위축되는 말기에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 정도까지 병이 악화하면 시력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습성 황반변성일 때는 당장 증세가 나타난다. 황반에 비정상적인 혈관이 터져 흉터가 생기면서 황반 자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당연히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증세가 약하면 가운데 부분이 찌그러지거나 구부러져 보인다. 여기에서 더 악화하면 중심부가 아예 보지 못할 정도로 까맣게 나타난다. 박 교수는 “이 정도 증세가 나타나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며 “증세가 악화하기 전에 병원을 찾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자가 진단이 가능하다. 박 교수는 ‘암슬러 격자 검사’를 권했다. 건성 황반변성 중기 이전에 병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바둑판 모양이 직선으로 보인다면 정상이다. 하지만 휘어지고 검게 보이는 부분이 있거나 끊어져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황반변성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게 좋다. 박 교수는 “이 검사는 안과 의사들도 직접 해 볼 정도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니 가급적 자주 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 단계별로 치료법 달라
치료법은 황반변성의 진행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건성 황반변성이면 전문의약품은 없다.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게 주된 치료다. 꾸준한 관리를 통해서 병의 악화를 막는 것. 우선 금연과 선글라스 착용은 필수다. 담배와 자외선이 병의 진행 속도를 당길 수 있다. 이와 함께 베타카로틴, 루테인, 안토시아닌 등 눈에 좋은 성분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지중해 식단도 도움이 된다. 박 교수는 “다만 베타카로틴의 경우 흡연자는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고용량의 항산화비타민을 먹는 것이다. 박 교수는 “여러 차례 임상시험 결과 고용량 비타민이 건성 황반변성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시중에서 파는 일반 비타민제와는 다르니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습성 황반변성으로 악화했다면 시력을 보존하기 위한 적극적 치료가 필요하다. 우선 혈관의 파열을 막아 흉터가 덜 생기고, 황반이 덜 손상되는 치료를 해야만 한다. 안구에 항체 주사를 놓아 혈관의 활동성을 약화시키는 치료가 중점적으로 이뤄진다.
보통 발병 첫해에 6회 주사를 맞는다. 매달 혹은 두 달 간격으로 주사를 맞는다. 이후로도 필요하다면 평균 2∼4개월 간격으로 주사를 맞는다. 다만 환자에 따라 주사 횟수와 간격은 달라질 수 있다. 박 교수는 “좀 좋아졌다고 해서 주사를 끊으면 혈관의 활동성이 다시 강해지면서 시력을 잃을 수도 있어 환자에 따라서는 평생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 금연하고 정기 검진 필수
황반변성의 위험 요소를 압축하자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노화, 둘째가 유전적 요인, 셋째가 환경적 요인이다. 박 교수는 “노화와 유전적 요인은 피할 수 없더라도 환경적 요인만 잘 관리하면 병의 예방과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첫째, 금연해야 한다. 박 교수는 “흡연만으로도 황반변성 발생 확률이 2, 3배 높아진다”며 “따라서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둘째,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 등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황반에 쌓이는 노폐물을 줄일 수 있다. 더불어 규칙적인 운동도 필수다.
셋째, 건강한 식습관도 필수다. 등 푸른 생선이나 녹황색 채소를 자주 먹는 게 좋다. 박 교수는 추가로 녹차를 추천했다. 박 교수는 “환자들의 식습관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매주 2회 이상 녹차를 마시는 경우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넷째,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야 한다. 다섯째, 50세가 넘으면 정기적으로 눈 검진을 해야 한다. 박 교수는 “안저검사 하나만 해도 황반변성, 녹내장, 당뇨병성 망막병증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심 소견이 나오면 그 후 매년 검사를 하면서 진행 상태를 살펴야 악화를 막을 수 있다. 박 교수는 “황반변성을 노안으로 여기면서 무시하지 말고 적극 대처해야 실명을 막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