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교수 인터뷰 “대통령이 ‘日帝 식민지배 불법무효’ 분명히 밝혀야” “尹, 중도지향성 잃은 것 아닌가”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4.08.16.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대통령이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 무효’라는 대한민국의 일관된 기조를 분명하게 밝혀 모든 논란을 없애길 바란다.”
최근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촉발된 정부와 광복회의 갈등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16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 교수는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출마를 도운 최측근이자 죽마고우이면서,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광복회가 올해 8·15 광복절 경축식을 정부와 별도로 개최한 데 대해 “정부가 독립기념관 이사로 일제의 수탈을 부정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을 임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반일 종족주의’ 공저자를 임명한 데 이어 독립기념관장에까지 논란이 많은 인물을 임명한 걸 (광복회가) ‘도발’로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대통령 주위에 역사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부추기는 이들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철우 교수 “대통령 주위에 이상한 역사의식 부추기는 이들 있지 않나”
‘역사전쟁’ 복판에 선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방아쇠일 뿐… 독립운동 의미 지우려는 이들 많아
일제 주권 침해에도 나라 소멸 안 해… 대한제국-1919년-1948년 민국 계속
미래 위해 경색 한일관계 개선 당연… 국민 동의 얻으려면 역사관 확고히
친일 논란-정당성 시비 피해야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방아쇠일 뿐… 독립운동 의미 지우려는 이들 많아
일제 주권 침해에도 나라 소멸 안 해… 대한제국-1919년-1948년 민국 계속
미래 위해 경색 한일관계 개선 당연… 국민 동의 얻으려면 역사관 확고히
친일 논란-정당성 시비 피해야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6일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일제 식민지배가 불법 무효라는 확고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법사회학 연구자로 일제강점기 국적 문제를 포함한 국적법 전문가이기도 한 이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해 “역사전쟁을 일으키면서 한일 관계를 끌고 나가니 자꾸 불필요한 친일 논란을 일으키고 정당성 시비에 걸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출마 선언을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역사전쟁’을 직시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광복절 경축식이 갈라져 열렸다.
“착잡하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한 원인은….
“작년 광복절에도 건국절 논란이 있었는데, 가까스로 경축식이 거행됐다. 이후 독립기념관 이사에 낙성대경제연구소장(박이택)이 임명됐을 땐 이사진과 독립운동 유관 단체들이 강력히 항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오불관언이었다. 김 교수(이 교수는 그를 ‘관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교수’로 불렀다)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건은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임명 등을 포함해 묵은 문제가 터지는 걸 촉발한 방아쇠일 뿐이다.”
“해외에서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들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찾아주자는 운동이 벌어져 2005년 국적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국회 법사위에서 ‘그분들은 국적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국적을 찾아드릴 필요가 없다’는 검토 보고가 나왔다. 그분들은 조선 국적 또는 1919년 선포된 대한민국 국적이라는 게 대한민국과 국회의 공식 입장이다. 다른 직책이라면 몰라도 독립기념관장 후보자가 이를 몰랐다는 건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일제가 강제로 뺏긴 했지만, 나라를 뺏긴 건 엄연한 사실 아닌가.
“강도가 물건을 빼앗으면 주인이 소유권을 잃는가? 물건의 점유만을 잃는 것이지 소유권을 잃는 건 아니다. 국가 역시 강점으로 ‘소멸됐다’는 것과 ‘주권이 침해됐다’는 건 다른 문제다.”
―‘영토, 국민, 주권’이 있어야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대한민국이 북한에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수십 년이 지났다고 해서 헌법의 영토 조항을 망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국제적으로 불법 강점 전후 국가의 동일성과 계속성을 주장하는 예가 많이 있다. 소련의 해체로 독립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소련 편입 전의 자국이 소멸하지 않았다며 1940년 강점 전의 법제를 되살리기도 했다.”
―1941년 11월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제정한 것, 김구 선생이 1945년 9월 성명에서 “건국의 시기로 들어가려 하는 과도적 단계”라고 말한 것 등도 당시엔 아직 건국이 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아닌가.
“한국이 소멸했으니 나라를 새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주권이 침해된 나라의 주권을 되찾아 나라의 실질을 갖춘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건국’이라는 말을 레토릭(수사)으로 쓰는 예는 많이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제2의 건국’도 그렇다.”
―김 관장은 건국절 제정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런 말로 논란을 피해 가면서, 실제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의미를 지우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도 건국절을 추진하거나 검토한 적이 없다는데….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역사적으로 헌법으로 확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공식 호칭 대신 ‘상해 임시정부’라고 불렀다.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왜 안 썼는지 의아하다. 이런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역사적 자기 인식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 달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대한제국-1919년 대한민국-1948년 대한민국의 동일성과 계속성에 대한 확신이다. 이를 대한민국의 주권적 자기 정의(sovereign self-definition)라고 말하고 싶다. 이걸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1948년에 처음으로 태어난 나라로 보면 한반도 전체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할권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도 약화된다. 일제 통치의 불법 무효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수십 년 동안 과거사를 둘러싸고 오랜 한일회담을 통해 우리가 요구해 온 것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잃게 된다. 누구나 관점을 달리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정부와 공직자는 이런 관점을 따라야 한다.”
―‘1919년 대(對) 1948년’의 건국 시점 논쟁을 어떻게 보나.
“의미가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한민국은 이미 존재하는 나라였기에 건국을 논할 이유가 없다. 광복회는 없던 국가가 1919년에 건국됐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한제국은 이미 근대 국제질서에 편입되어 다자조약도 체결한 국가다. 그 조약의 효력이 계속됨을 1986년 대한민국 외교부가 확인했다. 그 국가가 1919년에 이름을 바꾸고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것이지, 새로 건국된 것이 아니다.”
―과거 정부의 입장은 어땠나.
“이승만 대통령이야말로 이런 대한민국의 동일성과 계속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에 서명국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될 뻔했는데, 일본과 영국이 반대해 안 됐다. 반대 논리가 바로 ‘한국은 일본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역대 정부가 대한민국의 계속성을 분명히 했다.”
―독립기념관장은 꼭 독립운동가 후손이 맡아야 하나.
“그렇지 않다. 폭넓게 맡아야 한다. 관장 심사 기준에 독립운동가 후손을 우대한다고 돼 있다고 한다. 비록 관행이었다고 해도 세대가 많이 내려온 이상 이젠 바꿀 필요가 있다. 관장에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뽑힐 수 있도록 국민이 보는 앞에서 재공모를 했으면 좋겠다.”
―광복회장이 ‘용산에 일제 밀정 같은 존재의 그림자’를 언급했는데….
“격앙된 가운데 나온 말인데, ‘밀정’은 좀 과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심경이었는지는 이해한다. 광복회장이야말로 반민특위 때와 달리 ‘친일’로 낙인찍히는 사람의 범위가 부당하게 늘어났다는 의견을 계속 피력해 온 분이다.”
―광복회장과 대통령의 관계는….
“광복회장께서 작년 한일 정상회담 때 대통령을 정말 많이 도왔다. 전직 주일 대사들을 만나 ‘각자 뛸 수 있는 공간에서 같이 노력하자’고 했다. 강제징용 해결 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엔 ‘피해자들을… 경청하고 반영되도록 노력하되 내내 업고 외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인터뷰하며 정부에 힘을 실었다. 역사관을 확고히 함으로써, 국민적 동의를 얻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자는 생각이었는데…. 참 아쉽다. 그렇게 도울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이 배척당하고, 공격당하고, 음해당하는 것이 그분에겐 굉장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인 것 같다.”
―야당은 ‘친일 정권’이라고 비판한다.
“난 ‘친일’이라는 용어에 매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친일진상규명특별법, 재산환수법에 반대했고, 류석춘 교수 위안부 관련 발언 기소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칼럼을 쓴 사람이다. 정부가 ‘친일 몰이’를 자초하고 있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과거사 언급이 없었다.
“전전(戰前) 일본이 가한 고통을 일깨우는 걸 회피하는 게 일본의 적극적 조치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되겠나.”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을 평가한다면….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어내는 건 불가피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개선이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디딘 건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일본과의 우호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도 국가의 역사적 자기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래야 용서를 하고 아량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비위를 맞추며 무슨 조치를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구걸, 굴종에 불과하다.”
―취임 전 대통령의 역사 인식은 어땠나.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2018년 강제징용 대법원 재상고심 판결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함께 친구 모친상 조문을 갔다가 내가 ‘청구권 협정 해석상 청구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하자 대통령이 정색하며 배상 판결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작년 강제징용 해법을 제시할 때 판결에 문제가 있는 듯 말하기보단 ‘판결은 존중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정치적으로 풀겠다’고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다.”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변한 것인가.
“대통령이 휘둘린다고 하긴 어렵지만… 대통령 주위에서 이상한 역사의식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 한국 정치가 양극화가 너무 심하고, 극단적인 네거티브로 가다 보니, 공격당하다 (자신도) 점점 극단으로 가서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싶다. 대통령에게 ‘중도 민심을 잃지 말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중도 민심을 잃으면 곤란하지 않으냐’고 했는데,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해야 중도로 확장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답을 들었다.”
―대선 전 윤 대통령이 ‘정치에 투신하면 여러 강점을 발휘할 것’이라고 인터뷰하는 등 많이 옹호했는데, 지금은….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었는데, 좁아져 매우 아쉽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