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사회부 기자
16일 찾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어린이집 인근 인도(人道)에는 다른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볼라드)’과 달리 새롭게 만들어진 볼라드 하나가 있었다. 새하얀 시멘트 위에 고정된 새 볼라드를 힘껏 밀어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이 볼라드가 들어선 건 이달 5일 벌어진 사고 때문. 그날 가해 차량은 횡단보도와 인도 경계에 설치된 볼라드를 부순 뒤 인도를 따라 60여 m를 질주했다. 그 차량에 치여 인도를 걷던 1명이 다쳤고, 1명이 숨졌다.
지난달 1일 9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총 16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참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이었다. 두 사건 모두 인도와 도로를 분리하는 최소한의 장애물이 있었지만 생명을 지키기에는 부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용산 사건 때는 볼라드가, 시청역 참사 당시에는 가드레일(방호울타리)이 차량의 인도 진입을 막아내지 못했다.
인도와 도로를 구분 짓는 공간에 설치하는 장애물은 통상 횡단보도 앞에는 볼라드, 횡단보도가 없는 곳엔 가드레일이다. 그런데 돌진하는 차량에 모두 허망하게 뚫렸다. 도로를 걷는 것도 아니고, 인도를 걷는데도 불안하다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어난 이유일 것이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인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상자 수만 1만2256명에 달한다는 경찰 통계도 불안감을 뒷받침한다.
시청역 참사 당시 사고 차량을 막아내지 못한 가드레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가드레일은 보행자 보호용이 아니라 보행자가 무단횡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만일 차량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그 가드레일이 만들어졌다면 시청역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건 가해자가 갑자기 속도를 낸 차량을 멈추려 가드레일을 박았다고 진술한 걸 그의 책임 회피용으로만 생각해서 될 일은 아니다.
물론 이렇게 설치된 것에도 이유는 있다. 볼라드의 경우 강한 재질로 만들면 시각 장애인들이 부딪혔을 때 다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시각 장애인들이 볼라드에 부딪혀 다친다고 한다. 가드레일의 경우 고속도로처럼 강도가 높은 것을 쓰게 되면 지나치게 커 도시 미관을 해치는 등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가드레일의 경우 시청역 참사가 안긴 사회적 충격 때문인지 서울시가 나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볼라드의 경우 광화문광장에 강도 높은 볼라드를 만든다는 것 외엔 아직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장애인 단체들의 우려 때문이라면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볼라드 주변에 점자판으로 볼라드의 존재를 알려주는 보완책이 이미 있다. 용산 사고가 벌어지고 열흘 뒤인 15일 서울 성북구에서도 차량이 인도로 걸어가던 행인을 쳐 2명이 다치는 아찔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도 볼라드는 돌진하는 차를 막아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