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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쉬는’ 청년 44만명 역대 최다… 76%는 “일할 생각 없다”

입력 | 2024-08-19 03:00:00

1년새 4만2000명↑… 청년층의 5.4%
“임금-근로조건 맞는 일거리 못찾아”
대기업-中企 이중구조 고착화 속
양질 일자리 아니면 구직 자포자기





“갑자기 야근을 하게 되더라도 야근 수당을 안 주더라고요. 대기업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에 들어가고 싶은데, 그간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일단은 그냥 쉬고 있어요.”

작은 건축 관련 업체에서 설계 업무를 담당했던 이모 씨(28)는 올해 6월 회사를 관뒀다. 1년 4개월가량 다녔지만 잦은 야근에다 상사와의 갈등까지 겹쳐 더 견디기가 힘들었다. 같이 일하던 또래 동료 2명도 함께 퇴사했다. 이 씨는 “지금은 일단 모아둔 돈으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며 “건축 업계가 아니더라도 좋은 일자리가 있는 분야를 확실히 알아보고 구직에 나설 계획이지만 두려움이 커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이 씨처럼 일을 하지도, 일자리를 찾지도 않으면서 쉬고 있는 청년이 지난달 44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7월 중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쉬었음’ 청년의 76%는 일할 의사도 없었다. 정부가 이들을 다시 일터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쉬는 청년, 코로나 때보다 많아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쉬었다’고 답한 15∼29세 청년은 44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4만2000명 늘어난 규모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7월 중 가장 많다. 전체 청년층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4%로, 7월 기준으로 가장 높다. 이들은 통계청이 매달 실시하는 조사에서 현재 일하지도 않고 구직 활동도 안 하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1주일 동안 주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쉬었다’고 답한 이들이다.

‘쉬었음’ 청년은 7월 기준으로 10년 전만 하더라도 20만 명대에 그쳤다. 이후 계속 늘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첫해인 2020년에는 44만1000명까지 증가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보다도 많아졌다. 1∼7월 전체로 보면 30대와 40대 ‘쉬었음’ 인구도 각각 월평균 29만3000명, 28만1000명이었다. 특히 30대 ‘쉬었음’ 인구는 지난해 1∼7월보다 9.4% 늘어 전년 동기 대비 2021년 1∼7월 이후 3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그냥 쉬고 있는 청년 중에는 구직 의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쉬었음’ 청년 중 일하기를 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 이는 33만5000명이었다. ‘쉬었음’ 청년의 75.6%가 일할 의사가 없었다는 뜻이다. 나머지 일하기를 원했던 ‘쉬었음’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찾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42.9%는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 조건이 맞는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를 꼽았다. 이어 ‘이전에 찾아봤지만 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에’(18.7%), ‘교육·기술 경험이 부족해서’(13.4%) 등의 순이었다.

● “좋은 일자리 자체를 더 만들어야”

특별한 이유 없이 쉬는 청년들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11월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내놨다. 올 5월에도 취업준비생과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을 위한 지원책이 담긴 ‘사회 이동성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1998년부터 청년의 일자리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커다란 정책이 총 6, 7번 있었지만 단순히 이런 정책으로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며 “좋은 일자리 자체를 더 만들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쉬었음’ 청년이 늘어난 건 노동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중구조 문제가 고착화되면서 청년층의 높아진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한 결과”라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커 나가는 역동성 문제를 해결해야 청년층이 노동시장으로 좀 더 쉽게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종=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세종=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