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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 무용론 확산… 60명 중 26명 임명 강행

입력 | 2024-08-19 03:00:00

尹정부 43.3%… 文정부 36.5%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년 3개월 만에 인사청문회 대상 공직자 60명 중 43.3%(26명)에 대해 야당 동의를 얻지 못한 채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문재인 전 대통령은 63명 중 36.5%(23명)를 임명 강행했다.

18일 동아일보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인 2022년 4월부터 올해 8월까지 인사청문 요청 대상이었던 공직자 60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에 못 미치는 29명만 여야가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한 뒤 대통령이 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등 5명은 인사청문회 전후로 자진 사퇴했다. 이달 말과 다음 달 초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등 3명 지명에 대해서도 야당이 반발하고 있어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을 경우 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국회가 견제하도록 한 인사청문회 제도의 취지가 무력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야당은 인사청문회를 신상털기와 인신공격성 비난으로 얼룩지게 하면서 정작 검증을 제대로 못 하고, 대통령은 부적격 요소가 발견되더라도 야당의 의견을 무시한 채 임명을 강행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인사청문회를 정쟁 수단으로 생각하는 야당도 문제지만 인사청문회 대상 공직 후보자의 40% 이상을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것은 인사청문회 자체가 무용해졌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文정부 36.5%, 尹정부선 43.3%… 야당 동의없이 임명 ‘악순환’


인사청문회 무용론
野 “돌려막기 인사가 문제” 지적… 與-대통령실 “청문회를 정쟁 몰아”
전문가 “가족사항 비공개로 하고… 대통령, 국민 공감할 인사 지명을”

“대통령실이 임명 강행을 염두에 두고 돌려막기 인사를 하면서 국회 권한을 묵살하고 있다.”(야당 의원)

“야당이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을 막고 정권에 대미지를 주기 위해 신상 털기와 망신 주기성 인사청문회를 만들어 안타깝다.”(대통령실 관계자)

여야가 이처럼 네 탓 공방만 거듭하는 가운데 인사청문회가 정책, 도덕성 검증보다는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대통령은 야당이 동의하지 않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 조사 결과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청문보고서 미채택 등 야당의 반대에도 공직 후보자를 임명 강행하는 경우가 이전 정부보다 크게 늘었다. 문재인 정부 임기 전체 문 대통령의 임명 강행 건수는 인사청문 대상 공직자 93명 중 34명(36.6%)이었다. 이전엔 노무현 정부 3건, 이명박 정부 17건, 박근혜 정부 10건이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임기 2년 3개월 만에 야당 동의 없이 임명을 강행한 공직 후보자는 26명으로 같은 기간 문재인 정부 때(23명)보다 3명 늘어났다. 대통령이 지명한 공직 후보자 가운데 비중(43.3%)도 문재인 정부 같은 기간(36.5%)보다 늘어났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가 정권 교체로 공수가 바뀌었을 뿐 인사청문회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과 마찬가지로 권력 간 존중이라는 취지를 전혀 못 살리고 극한 대립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야당 “돌려막기” vs 여당·용산 “정쟁 몰이”

야권에서는 대통령 임명 강행 건수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야당도 두루 인정할 인사가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할 측근으로 돌려막기 인사를 하는 게 문제”라는 시각이다.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인사청문회를 앞둔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을 지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해서도 야당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인선 풀이 너무 좁은 느낌이다. 그동안 감동 있는 인사를 한 게 있느냐”며 “후보자 논란 시 대통령이 여론을 의식해 후보자를 지명 철회하는 사례도 없어졌다”고 했다.

반면 대통령실과 여당은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MBC 등 공영방송 이슈로 첨예하게 대립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청문회 때 야당이 초유의 ‘3일 청문회’를 진행한 것을 대표 사례로 꼽는다.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당시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를 향해 “뇌 구조가 이상하다”는 막말을 해 도마에 올랐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는 야당이 장남의 미국 체류 시절 행적을 문제 삼는 과정에서 질병 이력이 노출되면서 논란이 됐다. 여당에선 “자식 문제까지 이렇게 비정하게 다루는 게 맞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최근 청문회에서 야당이 치명적인 팩트를 하나라도 밝혀낸 게 있냐”며 “그저 후보자를 공격해서 무너뜨리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 “대통령이 국민 공감 받을 인사 지명해야”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인신공격, 신상 털기가 집중되면서 인사청문 대상 고위공직자에 대한 기피 현상이 커졌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특히 본인은 원한다 해도 가족들의 호소, 반대로 나서지 못한다는 것.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10월 시정연설 전 당시 박병석 국회의장 등과의 환담에서 “좋은 인재를 모시기가 정말 쉽지 않다. 청문회 기피 현상이 실제로 있다”며 “가급적 본인을 검증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요청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에서도 “야당이 무조건 반대를 하는 상황에서 본회의 표결이 필요한 총리 인선이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인사청문회가 입법 취지에 걸맞게 미국처럼 정책청문회가 되도록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묵 교수는 “자식이나 가족 등에 대한 내용은 여야 합의로 비공개로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대통령실이 철저한 검증을 거쳐 국민에게 공감받을 인사를 지명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조 교수는 “정권에서 사전 검증을 철저히 하고, 문제 있는 인사는 대통령실 내부에서 ‘안 된다’고 직언해 걸러야 한다”고 했다.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
김성모 기자 mo@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