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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방송인, 유튜버…태권도 ‘월드스타’ 이대훈 “지금이 가장 행복” [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4-08-19 12:00:00


‘월드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대훈의 돌려차기 모습. 이대훈은 은퇴 후 교수님이자 방송인, 유튜버로 바쁘지만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대훈 제공

한국 남자 태권도의 신성 박태준(20)은 이달 초 열린 파리 올림픽 남자 58kg급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준의 금메달은 한국 태권도가 올림픽 남자 58kg급에서 차지한 첫 금메달이었다.

박태준이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건 후 가장 많이 언급된 사람은 ‘월드 스타’ 이대훈(32)이다. 박태준이 이른바 ‘이대훈 키즈’였기 때문이다. 박태준은 이대훈을 ‘롤 모델’ 삼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했다. 이후 그의 후배가 되고 싶어 고등학교도 이대훈이 졸업한 한성고로 진학했다.


이대훈과 초등학생 시절의 박태준. 박태준은 파리 올림픽 남자 58kg에서 금메달을 땄다. 박태준 제공



남자 태권도 최경량급인 남자 58kg급은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 선수들이 이전까지 정복하지 못한 종목이었다. 종전 최고 성적은 이대훈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획득한 은메달이었다. 이대훈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68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출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박태준으로서는 ‘롤 모델’ 이대훈이 못 이룬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대신 이뤄준 셈이다. 박태준은 “그동안 한성고에는 (이대훈 선배님이 딴) 은, 동메달만 있었다. 내가 첫 금메달을 따서 끼워 맞춘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대훈은 한국에서 박태준의 경기 해설을 했다. 그는 “(태준이를) 처음 봤을 땐 귀엽고 조그만 ‘애기’였다. 좋은 선수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은 몰랐다. 역사적인 금메달 정말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대훈은 예전 학교로 찾아온 박태준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준 적도 있다.


이대훈이 2016년 리우 올림픽 8강에서 아부가우시(요르단)에 패한 후 그의 손을 치켜 세우며 축하해주고 있다. 동아일보 DB



두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는 공통점도 있다. 박태준의 결승전 상대였던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는 경기 초반 정강이 부상을 당해 여러 차례 통증을 호소했다. 박태준은 경기가 중단될 때마다 그의 상태를 체크했다. 마그메도프가 기권한 뒤에도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기에 앞서 마고메도프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그의 상태를 먼저 살폈다. 시상식에서도 다리를 절뚝이는 마고메도프를 부축해 시상대까지 함께 걸었다. 박태준이 보여준 ‘승자의 품격’이었다.

이 모습은 이대훈이 2016년 리우 대회 8강에서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에게 패한 뒤 보여준 모습과 오버랩됐다. 당시 이대훈은 패배의 아픔을 누르고 아부가우시의 손을 높게 치켜들어주며 축하해 주는 ‘패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이대훈은 “사실 리우 올림픽 때 몸도 가장 좋았고 자신감도 가장 컸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자는 생각이었다”며 “아부가우시 선수가 이긴 뒤 너무 좋아하고 있더라. 내 슬픔보다는 상대의 기쁨을 축하해주자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고 했다.


이대훈(가운데)는 지난해 세종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대훈 제공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을 여러 차례 제패하며 ‘월드 스타’로 불린 이대훈은 2021년 도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은 미완성으로 남겨 뒀지만 그는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 터라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많은 스타 출신 선수들이 은퇴 후 공허함이나 허탈감에 시달리곤 하지만 이대훈은 예외다. 선수 생활 때 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운동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라는 타이틀이 있었던 자리에는 ‘교수님’ ‘해설위원’ ‘방송인’ ‘유튜버’ 등의 직함이 새로 생겼다.

지난해 그는 세종대에서 4차 산업과 태권도의 융합을 주제로 논문을 써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곧바로 지난해 가을 학기부터 체육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대훈은 “엘리트 선수가 아닌 일반 체육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6시간 강의를 한다.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여전히 적응이 잘 안 된다”며 “처음엔 긴장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았는데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게 점점 재미가 붙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 기간에는 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몇 해 전부터 출연하고 있는 축구 예능프로그램에도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대훈은 작년부터 라이딩에 취미를 붙였다. 이대훈이 업힐을 오르는 모습. 이대훈 제공



이대훈은 또 취미이자 일로 유튜브 활동도 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대훈대훈’이란 이름의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6만 명 가까이 된다. 아들과 함께 놀러 가는 영상이나 간단한 ‘먹방’, 태권도 관련 컨텐츠와 각종 취미 활동 등이 컨텐츠다.

취미 삼아 유튜브를 시작한 건 대표팀에서 뛰던 2019년 경이다. 운동을 마치고 남는 시간에 혼자 촬영을 하고 혼자 편집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개인 채널이라 구독자가 채 1000명도 되지 않았는데 2021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뒤 단번에 5만 명이 넘는 구독자가 몰렸다. 그는 “재미를 위해서 시작한 유튜브다. 6살 된 아들과 추억을 저장하려는 게 원래 목표였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사실 내 채널이 너무 많이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어디 가서 따로 알리지도 않는다. 구독자가 너무 많아지면 전문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지금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또 “유튜브를 찍다 보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익숙하게 되는데 방송 활동을 하는 데 적지 않게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태권도 선수 시절 게임으로 테니스를 즐겼던 그는 은퇴 후 실제 테니스를 시작했다. 이대훈 제공



일주일에 3, 4일을 왕성히 활동하고 나면 나머지 날들은 그에게 자유시간이다. 이대훈 자신은 “마치 주3일 일을 하는 것 같다. 너무 바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한가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생활이 무척 만족스럽다”고 했다.

자유시간에 그가 가장 많이 하는 건 운동이다. 그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불고 혈관 사이에 뭔가가 끼는 느낌이 든다”며 “잘 먹은 후 운동을 통해 땀을 빼야 몸이 가벼워진다. 그래야 잠도 잘 자게 된다”고 했다.

요즘 그는 태권도 선수 생활을 하느라 하지 못했던 운동을 마음껏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도로 사이클이다.

지난해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그는 지인들과 한강 라이딩을 종종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 근교 이곳저곳으로 장거리 라이딩을 가기도 한다. 그는 “왕초보지만 개인적으로는 업 힐을 좋아한다. 우이동에 있는 도선사와 가평 유명산 등을 다녀왔다”며 “못 가본 데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라이딩 후 동반자들과 함께 맛있는 걸 먹는 즐거움도 크다”고 했다.

테니스도 배운지 6개월 가량 됐다. 아직 경기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스트로크가 좋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는 “선수촌에 있을 때 다양한 스포츠 게임을 즐기곤 했다. 그중에서 테니스 게임을 잘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배워보고 싶었다”고 했다.

대표팀 때부터 동료들과 즐기곤 하던 축구도 여전히 자주 한다. 방송 촬영 외에도 따로 축구 훈련을 한다. 이대훈은 “태권도 선수를 그만둔 뒤에도 일주일에 최소 사흘은 운동을 계속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산타 복장을 한 이대훈의 모습. 이대훈 제공



태권도 선수 시절과는 차이는 즐기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태권도 역시 그가 좋아서 열심히 했던 운동이지만 모든 체급 종목이 그렇듯 체중조절이라는 어려움이 항상 있었다. 183cm의 장신인 그는 특히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58kg급에 출전하느라 극한의 체중 감량을 해야 했다.

그는 “나뿐 아니라 모든 태권도 선수가 이틀에 5kg 정도는 가볍게 뺀다. 열심히 뛰고 한증막 등에서 땀을 쭉 빼면 4, 5kg는 쉽게 빠진다”며 “하지만 58kg에 출전했을 때는 평소 한 끼만 먹고, 이틀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과정을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 겪는다”고 했다.


이대훈이 태권도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몸관리를 하고 있다. 이헌재 기자



지난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한국 선수위원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그는 향후 태권도 지도자와 스포츠 행정가 모두를 시야에 두고 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잠시 대표팀 코치를 맡기도 했던 그는 “선수들과 함께 운동하며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태권도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도 나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다면 기꺼이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태권도 행정가로서의 길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그는 “태권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태권도 발전을 위해 대한체육회나 대한태권도협회, 세계태권도연맹(WT) 등에서 활동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려면 영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꾸준히 공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권도 선수로서 정말 성실히,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며 “앞으로의 인생에서는 진정성 있고, 정직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뭔가를 같이 하고 싶은 사람, 마음이 가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