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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원호]금메달 따야 입 열 엄두 나는 ‘신동 콤플렉스’ 사회

입력 | 2024-08-19 23:15:00

안세영, 올림픽 우승 전까진 불만 못 밝혀
‘1등만 특별대우’ 성공신화 목맨 사회 단면
나머지 99명의 절망도 돌아보고 일으켜야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파리 올림픽의 가장 기억나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 배드민턴 금메달을 딴 직후 환희에 찬 소감 대신 협회에 대한 불만을 직접 토로한 안세영 선수의 인터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주변을 옥죄고 있는 무능하고 부조리한 시스템이 얼마나 흔한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용감하게 한마디 항의의 말을 던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특히 안세영 선수의 경기를 한 번이라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땀과 눈물과 환희를 잠시라도 함께한 사람이라면, 이 소중한 국보급 재능과 매력에 대한 응원을 멈출 수가 없을 것이며, 안 선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협회이건 무엇이건 그것은 척결해야 할 구악이라는 결론을 손쉽게 내릴 것이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도 심상치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이를 인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에 올림픽 이후 정확한 진상조사를 할 것을 지시하였고,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과 방송은 배드민턴협회의 무능과 둔감함을 맹폭하고 있다. 안 선수가 “김연아, 손흥민급 눈높이”라는 협회 측의 비난이나, 7년간 막내로서 대표팀의 빨래와 청소를 도맡아 왔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누구나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지면을, 이제 대통령을 포함한 만인의 빌런이 된 배드민턴협회를 비판하는 손쉬운 일에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이 사건은 그다지 간단한 사건이 아니며 현재의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가장 풀기 힘든 문제들, 재능과 노력, 개인과 조직, 엘리트와 대중 양자 간의 긴장과 공정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이라도 배울 수 있어야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의 발전은 사실 프로디지(prodigy·신동) 콤플렉스와 다름없었다. 어릴 때 ‘될성부른’ 신동들과 ‘떡잎부터 남달랐던’ 천재들이, 자라면서 필연적으로 위인이 되고 이웃과 나라를 바꾼 내러티브를 우리는 숱하게 읽고 들으며 자라지 않았던가. 국가 주도하에 ‘될성부른 산업’을 미리 알아봐서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소수의 재벌이 국가 경제를 대표하며 눈부신 성장을 성취한 곳. 소수의 재능 있는 프로디지들을 선발하여 이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금메달을 향한 꿈에 적극 투자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곳. 여기서 금메달을 노벨상이나 아카데미상, 빌보드 1위 등으로 바꾸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며, 대한민국은 그런 성공 신화를 추구해 왔다.

그래서 우리 또한 자녀들이 신동이었으면 하고 몰래 기도하지 않는가. 나에게는 흔적조차 없는 재능을 자녀들은 우연히라도 타고났으면 하고 빌면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각종 과외와 학원으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불과 스무 살이 되기 전, 성인으로서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교에서도 그 과정에서 성공한 프로디지들을 만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이들에 대한 유감은 없다. 사회가 이들에게 개인으로서 특별대우를 받고 더 큰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뛰어난 1명이 뒤처진 99명을 ‘먹여 살린다’는 믿음, 금메달을 따면, 서울대를 가면, 아이돌이 되면, 의대를 가면, ‘일반인들’과는 다른 룰이 적용된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 선수가 금메달을 딸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던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닌 프로디지 콤플렉스를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와 빨래의 부조리를 밝히기 위해 금메달을 따야 하는 이 현실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며, 그에 대해 “아직 김연아, 손흥민급”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또한 얼마나 믿기 어려운 답변인가.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세상에 대해 비판하고 요구할 자격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99명은 그냥 침묵하고 희생해야 하는가. 안 선수가 은메달에 머무르거나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가만히 있어야만 했는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불행하다. 어릴 때 이미 걸러진 ‘될성부른’ 프로디지들은 끊임없이 다시 걸러지고 탈락할 것이며, 한 번 탈락은 영원한 인생의 패배로 이해되는 것 같다. 그 거대한 피라미드에는 ‘금메달급’이 되지 못한 프로디지들의 슬픔이 있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불효인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되지 못할 아이는 애초에 낳으려고도 하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특히 어른들이 이 99명 젊은이의 절망을 돌아보고 말 걸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나 젊고 아름답고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나이라고. 그래서 당신의 재능이 뒤늦게 꽃피길 우리가 천천히 기다리고 있다고.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