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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는척 귀금속 허위구매 시키고 먹튀, 신종 ‘로맨스 스캠’ 기승

입력 | 2024-08-20 03:00:00

채팅앱 통해 호감 얻은뒤 부탁… “당신 돈은 안든다” 안심시키고
“주문량 실수” 다그치며 입금 요구… 쇼핑몰 홈피 사라지고 연락 끊겨
2~7월 로맨스 스캠 피해액 502억





“나 대신 물건 하나만 주문해 줄래?”

박모 씨(29)는 한 익명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호감을 느낀 외국인 남성 A 씨로부터 지난달 12일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금반지를 대신 주문해 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받았다. A 씨는 “나는 외국이라 결제를 못 하니 한국에 있는 당신에게 대신 부탁하는 것”이라며 “결제는 내 계정에 있는 포인트로 하면 된다. 당신 돈은 들지 않는다”며 “나를 도와줬으니 수수료를 챙겨 주겠다”고 안심시켰다. 일종의 ‘구매 대행’ 부탁이었다. 하지만 이는 신종 사기 수법이었다.

● ‘연애 감정’ 이용해 사기에 끌어들여


A 씨는 지난달 10일 박 씨에게 “나는 말레이시아에 산다”, “곧 한국에 들어가니 만나자”며 접근했다. A 씨와의 온라인 채팅을 통해 연애 감정을 갖게 된 박 씨는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이후 A 씨는 박 씨에게 다른 2명의 인물을 온라인으로 소개시켜 주면서 “셋이 함께 공동 구매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됐고, A 씨는 박 씨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신 때문에 주문이 잘못 들어가 포인트가 차감됐다. 당신 사비로 벌충해야 한다”며 박 씨를 비난했다. 박 씨는 자기 돈을 입금하기 시작했다. 박 씨는 “처음엔 A 씨의 용돈벌이를 돕는다고 생각했다”며 “A 씨를 믿었기에 대출까지 해가며 주문 금액을 채웠다”고 했다.

50만 원짜리 상품 1개를 주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이 구매 대행은 3일 만에 3200여만 원 규모로 불어났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해당 쇼핑몰은 홈페이지가 사라졌고, A 씨와의 연락도 끊겼다. 처음부터 사기를 위해 만들어진 가짜 사이트였던 것. 박 씨는 총 8000여만 원의 피해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박 씨와 함께 미션을 수행하던 2명도 갑자기 단체채팅방을 나가고 잠적하는 등 A 씨 일당은 처음부터 박 씨에게 고의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따르면 A 씨의 수법은 부업사기 일종인 ‘팀미션’이다. 물건을 대신 주문해 주면 대가로 수익금을 준다고 설득한 뒤 가짜 온라인 쇼핑몰에서 귀금속 같은 비싼 상품을 단체 주문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결제 대금은 사기범 일당의 계좌로 들어가고 범행이 끝나면 사이트는 폐쇄된다. 이전에도 연애 감정을 악용해 돈을 뜯어내는 ‘로맨스 스캠’ 사기는 있었는데, 공동 구매 방식의 팀미션과 결합한 신종 사기인 ‘로맨스 미션’이 등장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 “당신 때문에 민폐” 다그치며 입금 유도

다른 여성 김모 씨(29)도 스페인 사람이라는 신원 불상의 남성 B 씨에게 비슷한 사기를 당했다. 김 씨는 지난달 5일 B 씨로부터 ‘미션 팀장’이라고 불리는 인물을 소개받았다. 김 씨는 B 씨와 온라인 채팅으로 연애 감정을 키워 가고 있었다. 미션 팀장은 김 씨와 다른 2명에게 온라인 쇼핑몰에서 귀금속류 공동 구매를 지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팀장은 김 씨에게 “주문 수량을 잘못 넣었다”, “당신의 실수 때문에 팀 전원이 다시 구매해야 한다”며 압박했다. 김 씨는 혹여 B 씨에게 피해를 끼칠까 우려해 팀장의 지시를 따랐고 그에게 돈을 입금했다. 결국 총 6000여만 원을 뜯긴 뒤에야 사기임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 김 씨는 “적극적인 구애에 속아 판단력이 흐려져 어느 순간 돈을 입금하고 결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로맨스 스캠 피해가 늘자 올 2월부터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가 이를 관리하도록 했다. 2∼7월 사이 경찰에 접수된 로맨스 스캠 범죄는 총 791건, 피해액은 총 502억 원이다. 김준수 법무법인 로인 대표변호사는 “로맨스 미션은 피해자에게 공동 구매를 진행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질타한다. 사기 행위에 의문을 품지 못하게 하는 신종 방식”이라며 “거짓으로 입금을 시키고 대금을 돌려주지 않는 행위는 사기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