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K웹툰-웹소설이 이끄는 IP산업… 한국의 새 성장 동력으로

입력 | 2024-08-21 03:00:00

[트렌드 NOW]
웹소설 팝업에 2000명 오픈런… 주류 문화로 올라선 웹툰-웹소설
패션 영화 식품 산업으로 확장 … 韓, 글로벌 IP 공급 국가 잠재력 갖춰





올해 5월 더 현대 서울 지하에서는 웹소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데못죽·사진)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약 1만5000명이 다녀간 이 팝업스토어에서는 오픈 첫날에만 2000여 명이 오픈런해서 대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얼핏 보면 그저 그런 팝업 행사에 불과하지만 소비자들이 열광한 이유를 살펴보면 상당히 인상적이다. ‘데못죽’은 7명의 남자 아이돌이 탄생하는 과정을 줄거리로 담은 웹소설인데, 소비자들은 소설 속 인물을 좋아하다 못해 마치 이들을 실제 아이돌처럼 대한다. ‘활자로 된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해서 ‘활자돌’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웹툰과 웹소설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다. 그동안 만화책이나 소설 속 인물을 좋아해 주인공을 따라 옷을 입고, 주인공을 닮은 인형을 사서 모으는 행동은 소수의 ‘오타쿠’나 하는 취미로 취급됐다. 오타쿠란 일본 만화식 그림체를 매개로 한 각종 만화, 게임, 음악, 패션 등을 즐기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들의 문화를 주류 문화에서 벗어난 주변 문화라고 하여 ‘하위 문화’(서브컬처)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이들의 지위가 달라졌다. 아이부터 부모까지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 되면서 하위 문화가 어느새 대중문화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잠실 월드몰에서 25일까지 진행하는 K웹툰 ‘외모지상주의’ 팝업스토어 전경. 팝업스토어에서는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활용한 각종 굿즈를 판매한다. 롯데백화점 제공

이런 변화는 왜 나타나고 있을까? 첫째,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소수의 오타쿠보다 다수의 대중을 겨냥한 전략이 유효했다. 예를 들어 만화 속 캐릭터의 팬이라고 생각해 보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마치 유아적 취향으로 느껴져 다소 부끄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만화 속 주인공이 실제 인물로 재탄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심지어 그 가상 캐릭터가 실제로 콘서트도 열고, 라디오에 출연도 하고, 팬들과 정기적인 팬미팅도 한다면? 일반적인 연예인 팬덤과 다를 바가 없다. 국내 IP사에서는 이미 시장에서 대중화된 연예인 팬덤 전략을 적용해 만화 속 주인공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둘째, 익숙한 콘텐츠 시장과 결합해 시장의 저변을 넓힌 것도 인상적이다. 신선한 소재로 눈길을 끈 웹툰, 웹소설 원작 IP를 드라마, 영화, 전시 등의 업종으로 전환해 시장을 확장한 것이다. 네이버웹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미의 세포들’은 2020년 완결 이후 드라마와 영화, 웹소설, 게임, 전시회, 식품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웹소설 ‘내일의 으뜸: 선재 업고 튀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지난 1년간 방송된 TV 드라마 중 가장 높은 화제성을 기록하기도 했다.

팝업스토어 외벽 곳곳에 원화 스케치를 그려 넣어 웹툰의 다양한 순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롯데백화점 제공

마지막, 업종 산업에서 콘텐츠 IP를 적극 활용해 시장이 더욱 커졌다. 패션산업이 대표적이다. 쉬인, 샵사이다 등 중국계 저가 패션 플랫폼이 한국에 진출하자 국내 제조·유통 일원화(SPA) 브랜드들은 웹툰 인기 캐릭터와 협업하며 이에 대응하고 있다. 이랜드 스파오가 웹툰 ‘마루는 강쥐’의 IP를 활용해 출시한 협업 상품은 10, 20대 사이에서 큰 인기몰이를 했다. 심지어 전자업계에서도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 Z플립6는 ‘냐한남자’ ‘마루는 강쥐’ ‘화산귀환’ 등의 웹툰과 협업하며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콘텐츠 기업들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올해 4월 네이버웹툰은 IP를 활용한 디스플레이 광고 상품 ‘원화컷 활용 DA 패키지’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는 기업들이 네이버웹툰 작품의 IP를 광고 모델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이미 그려져 있는 웹툰 원화를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광고 제작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비용 절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IP는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해외 선진국이 디즈니, 마블, 스타워즈, 슬램덩크 등 슈퍼 IP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때 한국은 IP를 소비하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한국도 글로벌 IP의 공급 국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 핵심은 ‘영속성’이다. 소비자가 싫증을 느끼지 않고 원작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며 팬덤을 형성해 나갈 때, 콘텐츠의 수명이 영속적으로 확장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전미영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