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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임보미]‘내 안의 꼬마’가 롱런 비결… 올림픽 金 조코비치의 고백

입력 | 2024-08-20 23:15:00

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다섯 번의 도전 끝에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건 노바크 조코비치는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전거 타는 모습을 올리고는 이렇게 적었다. ‘훈련 재개. 새 목표는 투르 드 프랑스. 타데이 포가차르, 내가 간다!’ 포가차르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올해까지 종합 우승을 세 번 차지한 현역 최강 사이클 선수다.

별명이 ‘조커(Joker)’인 조코비치에게 이 정도 농담은 일상이다. 그렇다고 이런 실없는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한 해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이 26일 개막이다. 테니스 선수 최초로 메이저 25승에 도전하는 그가 마냥 웃고 떠들고만 있을 리는 없다.

기자가 파리 올림픽 취재 기간 조코비치의 훈련을 지켜보다 놀랐던 장면도 세상 심각하다 일순간 장난꾸러기로 돌변하는 모습이었다. 조코비치는 자신이 움직이던 방향과 반대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즉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해 보이는 공을 놓칠 때마다 한참이나 허공을 보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무릎 수술을 받은 지 7주 차였고 첫 적응 훈련이었음에도 그랬다. 관중석이 텅 빈 코트에서 조코비치는 결승이라도 치르는 듯 공 하나에 울고 공 하나에 웃었다.

반전은 2시간 훈련을 마친 뒤였다. 조코비치는 네트 앞에서 공 두 개를 차례로 반대쪽 코트로 던졌다. 훈련을 돕던 스태프 두 명도 똑같이 했다. 베이스라인에 공을 가장 가까이 보내는 사람이 이기는 내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조코비치는 스태프의 공이 라인을 넘자 단호히 “아웃”을 외치기도 했다.

‘테니스 역사상 최고 선수’라 불리는 사람이 이런 시답잖은 내기에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 불현듯 조코비치가 했던 말이 스쳤다. 조코비치는 2022년 호주 오픈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미접종으로 호주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 뒤 “내가 테니스를 계속하는 건 아직도 내 안에 꼬마가 있어서다. 라켓을 쥐고 ‘나 이거 좋아, 하루 종일 할래’라고 말하던 네 살짜리 꼬마 말이다”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대체로 “재미있어서” 운동을 시작한다. 다만 그게 업이 되고 경쟁에 파묻힌 일상이 반복되면 재미를 잃기도 쉽다. 어린 나이에 세계를 제패하고도 바로 은퇴하거나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꼬마 시절 느낀 순수한 기쁨은 어른이 될수록 남들의 평가, 커리어에 대한 압박으로 퇴색되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더 이룰 것도 없는 이 남자는 벌써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도 가고 싶다”고 한다. 4년 뒤 그의 나이 마흔하나다.

법정 스님(1932∼2010)은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에 ‘우리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저버릴 때 늙는다.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우리가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때는 영혼이 주름지게 된다’고 썼다. 이마 주름은 좀 늘었을지 몰라도 조코비치의 영혼은 아직 팽팽해 보인다. 사람들은 여전한 그의 신체 능력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의 진짜 능력은 세상이 뭐라든 매일 ‘내 안의 꼬마’를 먼저 웃게 만드는 힘일지 모른다.

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