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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조 필요한데… 전기차 화재 매뉴얼에 “물 뿌려 진압하라”

입력 | 2024-08-21 03:00:00

車제조사별 화재대응 안내 제각각
개인이 불끄려다 피해 키울 수도



이달 2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전날 발생한 전기차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당시 차량 40여 대가 전소됐고 100여 대가 그을림 등 피해를 입었다. 인천=뉴스1



우리나라에서 전기차를 판매 중인 주요 제조사들의 화재 매뉴얼에 잘못된 내용이 여럿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소방용 수조가 있어야 불을 끌 수 있는데 운전자 개인이 물을 뿌려 진압하라든가, 전기차 화재에 무용지물인 C급 소화기로 대응하라는 식이다. 인천 서구 전기차 화재 이후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이 같은 잘못된 매뉴얼이 오히려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에 전기차를 시판 중인 업체 중 테슬라, 현대차, 기아, 벤츠, KG모빌리티(KGM), 캐딜락, 렉서스 등 7곳은 각 사 홈페이지에 자체적으로 만든 화재 대응 매뉴얼을 공개하고 있다. 본보는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 등 전문가 6명과 함께 각 사 매뉴얼을 분석했다.

테슬라의 모델X는 매뉴얼에 ‘고압 배터리에 난 불은 물로 꺼야 합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이호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일반적인 물로 진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불을 끄려는 과정에서 운전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운전자가 직접 물을 뿌려 불을 꺼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운전자까지 다칠 수 있다는 것. 이항구 원장은 “소방 당국이 사용하는 ‘이동식 침수조’를 제외하곤 배터리를 냉각시킬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기아의 EV6, KGM의 코란도 EV 등 4개 모델은 매뉴얼에서 ‘반드시 전기화재 전용 분말 소화기를 사용해 화재를 진압하십시오’ 등으로 안내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설명이 반만 맞다는 것이다. 국내 안전기준에 따르면 화재 유형은 일반(A급), 유류(B급), 전기(C급), 주방(K급) 등 총 4가지로 분류된다. 전기 소화기로 통하는 C급 소화기는 일반 내연기관 차량 화재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전기차 배터리 화재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이영주 교수는 “보이는 불꽃을 일시적으로 잠재울 순 있어도 완전 진화는 어렵다”고 했다. 이덕환 교수는 “배터리는 밀폐돼 있고 외부 프레임도 강하게 만들어져 아무리 소화수나 소화액을 뿌려도 내부로 들어가지 못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리튬 배터리 화재에 효과가 있다는 금속화재용(D급) 소화기가 시중에 판매 중이지만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 인천 서구 화재 뒤 소방 당국은 국내외에 현재 시판 중인 소화기들은 전기차 배터리의 불을 끌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매뉴얼이 차주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소방 당국이나 국책연구기관을 통해 전기차 운전자들을 위한 공통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기차 화재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김필수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에서 불이 났다면 ‘대피 후 신고’ 원칙을 명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학훈 교수는 “전기차를 구입하면 반드시 매뉴얼을 완독해야 차량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매뉴얼은 (배터리 화재만 특정한 게 아니라) 차량 전반 화재를 가정한 것”이라며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고 소방서에 연락해 전기차 화재임을 알리고 조치를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KG모빌리티 관계자는 “소화기와 충분한 양의 물을 이용하라는 내용은 배터리 화재가 발생했을 때의 매뉴얼이 아니다”라며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 소방서 등에 연락하라는 내용도 매뉴얼에 함께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