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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서 韓배터리 특허 베껴도 입증 어려워… LCD처럼 당할 판”

입력 | 2024-08-21 03:00:00

국내 3사, 소재-공정 등 특허 선점
“특허 침해 1000건… 빙산의 일각”
글로벌 특허침해 정부 지원 절실
기술유출 방지 제도정비도 시급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중국 A사가 만들어 중국, 유럽 등 세계 각지에 납품하는 배터리가 자사 기술을 무단 도용한 것으로 보고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자체 조사에서 코팅분리막 및 전극 관련 특허를 10건 이상 침해한 것으로 파악됐다. A사의 배터리는 전기자전거, 청소기, 전동공구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보이는 제품을 앞세워 인도 등 신시장 진출까지 추진하고 있다.

‘가성비’ 배터리로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해 가는 중국이 공격적으로 한국 기술 베끼기에 나서며 기술력까지 높이고 있다. 한국 특허 경쟁력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지만 중국이 빠른 속도로 추격하는 데다 우리 기술을 갈수록 노골적으로 빼돌려 한국 배터리 산업 전반에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 배터리 특허, 韓 3만5766건 vs 中 6493건

20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기업의 특허를 해외 기업이 침해한 건수는 최소 1000건이다.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이 자체적으로 확인한 것만 600여 건에 이른다. 여기에 LG화학, 포스코퓨처엠 등 소재 기업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훨씬 더 불어난다. 대부분 중국 기업이 침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이 강점을 가지는 리튬인산철(LFP)보다 한국 기업이 독보적 기술력을 보이는 삼원계(NCM·리튬 코발트 망간) 분야에 침해가 집중되고 있다고 국내 산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특허가 소재부터 모듈 공정까지 핵심 분야를 대부분 선점했다”며 “삼원계 분야에서 한국의 특허를 회피해 배터리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세계 6대 배터리 기업 중 한국 기업들의 배터리 특허 수는 중국 기업의 5배를 넘는다. 동아일보가 특허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누적 특허 출원 건수는 3만5766건으로 2020년 누적 2만4440건 대비 46.3% 증가했다. 중국 배터리 양대 기업인 CATL과 BYD를 합산했을 때 지난해 누적 6493건 수준이다. 특허 집계는 글로벌 경쟁력 비교를 위해 한 나라에서만 출원한 경우를 제외하고, 최소 2개국 이상 출원한 케이스만 집계했다.

국내 소재 B기업은 배터리 양극재를 만드는 중국 기업 닝보룽바이를 상대로 이달 중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룽바이가 자사 양극재 제조 기술을 베껴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양극재는 전기차 배터리 원가의 5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배터리 3사의 한 임원은 “지금까지는 해외 기업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경고했지만 앞으로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특허 침해 확인 어려운 배터리, LCD 꼴 날까 우려”

국내 배터리 3사는 중국 기업들의 지식재산(IP) 침해가 갈수록 노골화되자 올해부터 소송도 불사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외형만으로 구조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 배터리 특성상 특허 침해 여부를 확인하고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임형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배터리는 공정이나 소재 화합물 관련 특허가 많아 이에 대한 침해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며 “과거 액정표시장치(LCD)도 이 같은 무분별한 침해를 겪으며 중국에 잠식당했는데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배터리 업계는 특히 중국이 광물, 소재 공급망을 틀어쥐고 있는 점을 ‘아킬레스건’으로 꼬집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광물, 소재 기업 대다수가 배터리 회사의 계열사인 경우가 많아 공급망을 무기로 이른바 ‘갑질’을 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며 “무엇보다 원재료가 납품되는 과정에서 우리 정보가 새 나가기 십상이어서 피해가 더 광범위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차원에서 글로벌 특허 침해를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업 스파이에 대한 처벌 강화 등 국내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은 “ 5년 전만 해도 배터리는 국내 기업 간 경쟁이었지만 이제는 글로벌 싸움이 된 만큼 기업들도 적극 대응하고 정부도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