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유령법인 총책 등 3명 기소 가상계좌로 돈세탁 5900억 달해 실명 확인없이 개설, 범죄에 악용
보이스피싱 등 범죄 조직에 7만 개가 넘는 가상계좌를 판매하고 10억 원대의 수수료를 챙긴 일당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20일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은 가상계좌 7만2500개를 유통한 조직을 적발해 총책 A 씨(41) 등 4명을 입건하고 이 중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에 가상계좌를 판매한 대가로 11억2060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판매한 가상계좌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이나 도박 자금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이 가상계좌들을 통해 유통된 범죄 수익만 59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적발된 가상계좌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합수단에 따르면 A 씨는 조직폭력배 ‘신양관광파’ 조직원 출신 B 씨(28) 등과 함께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와 판매 계약을 체결해 ‘머천트’(가상계좌 판매업자)로 활동했다. 가상계좌는 PG사가 보유한 모(母)계좌에 연결된 ‘입금 전용 임시 계좌’다. PG사로부터 관리 권한을 부여받은 머천트는 가맹점과 이용 계약을 맺어 가상계좌를 제공할 수 있다.
검거된 조직은 이를 악용해 보이스피싱 및 불법 도박 조직을 ‘가맹점’으로 모집하고 이들에게 가상계좌를 제공한 뒤 불법 자금을 관리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세탁한 자금에는 피해자 6명으로부터 편취한 1억2000만 원 상당의 보이스피싱 피해금도 포함됐다. 또 이들은 피해 신고가 접수될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을 대신해 피해자와 접촉한 뒤 사건을 무마시키고 계좌 지급정지를 회피하기도 했다.
합수단은 PG사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지급정지 신청이 접수된 뒤에도 이들에 대한 계약 해지와 가상계좌 이용 중지 등의 조처를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범죄 수익을 박탈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현금·계좌 등에 대해 추징 보전을 청구했고, 가상계좌를 매수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향후 금융당국과 함께 가상계좌 불법 유통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공유하고 가상계좌 악용 범죄에 대응할 방침이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