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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규제완화, 국회 못 넘을것”… 조합들 ‘8·8 대책’ 시큰둥

입력 | 2024-08-22 03:00:00

대책 발표 2주 됐지만 문의 없어
“인허가 통합, 현실 몰라” 부정적
“재초환도 고시 바꾸면 완화 가능
굳이 법 개정 이유 모르겠다” 지적





20년 넘게 재건축·재개발 인허가 업무를 맡아온 한 정비사업업체. 재건축 기간을 15년에서 9년으로 줄이겠다는 ‘8·8 주택 공급대책’이 발표된 지 2주가 됐지만 들어오는 문의가 거의 없다. 올해 1월 입주 30년 이상 된 단지에 안전진단을 사실상 면제해 주는 ‘1·10 대책’이 발표된 날 서울 내 재건축 초기 단지에서 전화가 빗발쳤던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 업체 대표는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만으로는 사업에 속도가 붙기 어렵다는 걸 조합들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1일 본보가 수도권 재건축·재개발 조합(추진준비위 포함) 2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든 조합이 8·8 대책의 실효성이 낮다고 진단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단 대부분 규제 완화 내용이 법 제정 및 개정 사항인데 여소야대 국회를 뚫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낮았다. 이상용 목동재건축연합회장은 “재건축에 부정적인 야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고 했다.

인허가 절차 통합의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일선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마저 “인허가 절차를 통합 단축하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8·8 대책의 핵심 중 하나는 ‘재건축·재개발 촉진법’을 제정해 △기본계획 및 정비계획 수립 △사업시행 및 관리처분 인가 절차를 통합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조합 및 지자체에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평형별 물량, 건축 설계안 등을 확정하는 사업시행 인가와 조합원별 분양가, 사업비 등을 확정하는 관리처분 인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양회승 경기 성남시 수진1구역 재개발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은 “단지를 어떻게, 얼마나 지을지 결정돼야 사업비 등을 매길 수 있어 사실상 동시 추진이 어렵다”고 했다.

법을 개정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에 대해선 “국토부가 고시 등을 바꿔 문제를 완화할 수도 있는데, 굳이 법을 개정하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재건축으로 인한 초과이익은 ‘재건축 기간 주택가격 상승분’에서 ‘정상 주택가격 상승분(전반적인 집값 상승분)’을 빼는 방식으로 구한다. 정상 주택가격 상승분을 계산할 때 한국부동산원 월간 통계를 기준으로 삼다 보니 초과이익이 과다하게 나온다는 주장이다. 반포현대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부동산원 월간 통계 기준으로는 입주 전 5년 동안 서초구 아파트값 오름폭이 23.4%밖에 되지 않지만 실거래가지수로 보면 99.0%”라고 했다.

지자체가 조합으로부터 사들이는 임대주택 가격을 1.4배로 올리는 방안도 크게 사업 속도를 올릴 만한 유도책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격을 정할 때 주택공사비만 고려하고 복도, 지하주차장 등 전체 공사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경희 여의도 삼부아파트 재건축추진준비위원장은 “비용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공급이 부족해진 가장 큰 이유가 공사비 급등인데 이에 대한 대책이 미진해 정비사업이 활발해지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건설사들이 공사 기간 중 비용이 증가하는 내역을 정기적으로 조합에 공유하도록 해 양측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용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사에 필요한 자재 종류와 가격을 정기적으로 조합에 알리고, 설계 변경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