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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모두 막을 순 없어도[소소칼럼]

입력 | 2024-08-22 11:00:00


요즘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릴 때면 주변에서 가장 크고 우람한 가로수를 찾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그늘이 필요해서는 아니다. 저쪽 도로로부터 좌회전을 하는 차가, 이쪽 도로로부터 우회전하는 차가 언제 인도로 돌진할지 몰라서, 만약 그랬을 때 인도에 설치된 방호울타리도, 차량 진입 억제용 말뚝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최근 알게 돼서다.

철로 만든 튼튼한 시설물들이 우릴 보호해 줄 것이란 믿음은 요즈음 몇 차례의 돌진 사고와 함께 부서졌다. 물론 지나친 기우일 수 있다. 하지만 시청역 역주행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몇 분 전 내가 그 인도를 가로질렀다는 사실은 ‘만약의 공포’를 불어넣기 충분했다.

한동안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본 적도 있다. 지난해 여름,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연달아 흉기 난동 사건이 터진 뒤였다. 20년 넘게 수천 번 다녀간 광장에 남은 핏자국을 보니 ‘나였을 수도 있었나’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것 역시 쓸데없는 근심일 수 있겠다. 탄천 공원을 걷다가 다리 밑을 지날 때면 공연히 걸음이 빨라졌다. 지난해 붕괴해 사상자를 낸 정자교는 산책할 때마다 지나던 다리였다. 수내역에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가 난 뒤로는 한동안 계단을 올랐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안도 마땅치 않은 이런 사고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무력감과 같은 감정이 밀려든다. 언젠가 이런 사고가 내게 닥치면 지면 꼼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아직도 억울한 죽음이 이렇게 많구나. 그렇게 무력감에 젖어 들다 보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 인재(人災)에 대한 분노는 더욱 커진다. 만약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부지런했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없었을 사고들. 올해 4월 있었던 견인차 역과 사고처럼 말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경기 광주시의 고속도로 한복판에 멈춰선 승합차를, 뒤따르던 승용차가 들이박았다. 승합차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승용차 운전자 문모 씨(32)는 간신히 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문 씨는 1차선 도로에 주저앉아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외쳤다. 구급차들이 현장에 속속 도착했다. 부상이 있었지만 문 씨는 주변과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몇 분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사고 차량을 견인하겠다며 역주행까지 감행하며 몰려든 사설 견인차 중 한 대에 치인 것이었다. 그는 살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바로 그 순간 목숨을 잃었다.

안타까운 사연은 이날로부터 석 달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그 사이 유족들은 가해 운전자에 대한 엄벌 탄원서를 법원에 냈다. 문 씨는 먼 친척들도 살뜰히 챙기는, 가족들이 의지하는 기둥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가해 운전자의 공판이 열린 법정엔 10명이 넘는 지인들이 참석해 눈물을 흘렸다. 문 씨는 내년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었다고 한다.

유족들은 이 사건을 깊게 취재해 보도해도 괜찮다고 허락했다. 다만 문 씨의 사연보다 견인차 난폭 운전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법과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했다. 그들 역시 이 비극이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사실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다.

문 씨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인간의 욕심, 그 욕심들을 경쟁 붙여 난폭운전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익구조에 있었다. 일단 갈고리를 걸고 부당하게 많은 돈을 갈취하는 행태는 오래전 막혔지만, 업계에 따르면 레커차 기사들은 인근 정비소와 모종의 계약을 맺어, 사고 차량을 정비소로 견인해올 경우 수리비의 20~30%를 리베이트 형식으로 받는 관행은 남아있다고 한다. 수리 견적이 큰 대형 사고일수록 리베이트도 커져 경쟁이 과열되는 것이다.

견인차가 빠르게 출동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거나 역주행을 하면서 낸 사고는 매년 있었다. 변화할 기회는 충분했다. 대안이 없지도 않다. 미국의 여러 주에선 모든 사설 견인업체를 관할 경찰서에 등록하게 한 뒤, 순번제를 통해 출동하게 한다. 경쟁이 일어나지 않게 구조를 개선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수 년째 사고가 반복돼도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 정부와 국회를 움직이는 것은 범국민적 관심과 공분일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막을 수 있는 사고마저 막지 못하는 딜레마 앞에서 또 한번 무력해지고 만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