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녀가 한여름 폭풍우를 피해 달리고 있다. 한 손은 연인을 보듬거나 의지하고, 다른 손으로는 황금색 천을 우산처럼 머리 위로 높이 맞들었다. 여자는 두려움에 찬 표정이지만 남자는 그런 여자를 다정히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누구고 무엇을 표현한 걸까?
피에르 오귀스트 코트는 1863년 파리 살롱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한 후 1870년대부터 로맨틱한 분위기와 감각적인 표현의 그림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폭풍우’(1880년·사진) 역시 1880년 살롱전에 출품돼 큰 찬사를 받았다. 그림 속 남녀에 대한 추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댕 드생피에르가 1788년 발표한 ‘폴과 버지니아’에서 따왔다는 주장이다. 모리셔스섬에 살던 소년 폴은 여동생 버지니아와 사랑에 빠지는데, 폭풍우가 몰아치자 버지니아의 겉치마를 우산처럼 쓰고 함께 뛰어가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소설가 롱고스가 쓴 ‘다프니스와 클로에’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2∼3세기 레스보스섬을 배경으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염소치기 소년과 양치기 소녀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시대와 배경이 다르지만 두 문학작품 다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청춘 남녀가 주인공이다.
코트는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사랑에 빠진 청춘 남녀의 감정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겠다는 확신에 찬 남자의 눈빛이 두려워하는 여자의 표정과 대비를 이룬다. 앞으로 기울인 몸의 각도와 빛과 어둠의 대조는 그들이 처한 위기의 순간을 긴장감 있게 전달한다.
사랑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화가는 위기의 순간을 함께 극복하는 앳된 커플의 모습을 통해 사랑에 빠져 봤던 이들에겐 추억을 되살리게 하고 아직 해보지 않은 이들에겐 사랑의 감정을 전하고 싶었던 듯하다. 인생의 거센 폭풍도 이겨낼 수 있는 게 사랑의 힘이니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