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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불어닥쳐도 生의 의지만 있다면, 마음은 꺾이지 않네

입력 | 2024-08-22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88〉폭풍우가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2016년)에서 주인공 료타의 대사를 통해 태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지붕을 밧줄로 동여맸던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린다(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폭풍우로 지붕이 날아간 일을 읊은 한시로 두보의 다음 작품이 유명하다.

시인은 안사의 난(安史之亂)으로 떠돌다 성도(成都)에 겨우 안착했지만 뜻밖의 시련을 겪었다. 8월 어느 날 큰바람에 초가지붕이 날아간 것이다. 시인은 날아간 지붕의 띠풀마저 훔쳐가는 남쪽 마을 아이들에게 분노하지만 입이 말라 소리도 못 지르고(“脣焦口燥呼不得”), 빗물이 새지 않는 곳이 없는 상황에 근심스러워 잠도 못 이룬다. 불가항력의 재해로 고통받는 시인의 모습이 애처롭다.

영화 속 료타는 과거 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흥신소에서 남의 뒷조사나 하면서 이혼한 아내에게 아들의 양육비조차 못 주는 무능력한 소설가다. 시인도 과거 임금에게 간언하는 좌습유(左拾遺) 자리에 올랐지만 숙종의 노여움을 사 쫓겨난 뒤 이젠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시에서 후대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내용은 마지막 “어찌하면 넓은 집 천만 칸 얻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을 크게 덮어줘 모두 기쁜 얼굴로, 비바람에도 움직이지 않고 산처럼 편안케 할 수 있으랴(安得廣厦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란 구절이었다. 영화 속 태풍이 선친과의 불화나 이혼 등 료타 개인의 문제를 자성하는 계기가 된다면, 시에선 폭풍우로 겪은 자신의 고난이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민으로 전화(轉化)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료타(위)는 태풍이 불어오는 밤 놀이터에서 아들과 대화를 나눈다. 티캐스트 제공 

하지만 폭풍우가 지나갔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필요한 것은 힘겨운 삶을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는 의지일 것이다. 료타는 되고 싶은 사람이 됐냐는 아들의 질문에 비록 되지는 못했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상 곤궁한 이들을 덮어줄 거대한 집을 얻겠다는 시인의 바람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런 애민의식을 가졌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공명(共鳴)했던 것처럼. 시와 영화가 주는 서로 다른 울림과 감동이 만나는 지점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