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2관왕 오상욱에게 듣는다… 한국 ‘어펜져스’ 3연패 비결은 처음 펜싱 시작한 중1 때만 해도 ‘사브르, 100년 지나도 금 못딴다’… 후배에게 모든걸 전수하는 문화로… ‘서양인 유리’ 정설깨고 세계 정상에 나 역시 후배들에게 모든걸 알려줘… 메이저 대회 결승서 후배들 만나길
파리 올림픽 펜싱 2관왕 오상욱이 대통령배 전국남녀펜싱선수권대회 겸 국가대표선수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는 21일 전남 영광스포티움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오상욱은 올림픽이 끝난 뒤 하루도 쉬지 못하고 화보, 광고, TV 예능 프로그램 촬영에 응했고 10월까지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전국체육대회까지 경기 일정이 줄지어 잡혀 있다. 오상욱은 “10년째 이렇게 살아서 아무렇지 않다. 사람들이 회사 가서 ‘오늘 회의’라고 하듯이 선수들은 ‘이제 대회구나’ 한다”며 웃었다. 영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와, 잘생겼다. 사진 같이 찍어 주세요.”
21일 대통령배 전국남녀펜싱선수권대회 겸 국가대표선수 선발대회가 한창인 전남 영광스포티움. 오상욱(28)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이 몰렸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장비 검사를 받으러 온 오상욱은 경기장에 머문 약 6시간 동안 후배 선수들부터 의료봉사 요원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다가와 휴대전화를 내민 모든 이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펜싱 선배들도 “우리 딸이 사진 꼭 찍어 오래”, “사인 좀 많이 해줘”라고 오상욱에게 부탁하기 바빴다.
17일부터 열리고 있는 이번 대회 참가 선수는 총 1021명. 지난해 843명보다 20%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올해로 64회를 맞은 이 대회 참가 선수가 1000명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펜싱협회 관계자는 “해마다 참가 선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3개 종목(에페, 플뢰레, 사브르) 가운데서는 사브르 참가자가 가장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한국 펜싱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처음 딴 건 2000년 시드니 대회 남자 플뢰레 정상을 차지한 김영호(53)였다. 이상기(58)도 같은 대회 남자 에페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대회 때까지 사브르는 올림픽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사브르는 상체 전체를 찌르거나 베어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팔다리가 긴 서양 선수에게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한국 남자 대표팀이 2012년 런던 올림픽 단체전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2016∼2017시즌부터 줄곧 국제펜싱연맹(FIE) 팀 랭킹 1위 자리를 지키면서 이 정설을 깨뜨렸다.
오상욱은 그 비결로 ‘펜싱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걸 후배에게 전수하는 문화’를 꼽았다. 오상욱은 고교 3학년이던 2014년 처음 대표팀에 뽑혀 열세 살 많은 김정환(41)과 방을 같이 썼다. 오상욱은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는데도 정환이 형이 자기 노하우를 전부 알려주더라. 나 역시 후배가 물어보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시즌에는 후배들 기량이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내 기량이 떨어질 때 후배들이 올라오는 건 좋지 않다. 함께 ‘월드클래스’로 올라서야 한다. 그래야 나도 동생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할 수 있다. 후배들이 내 그늘에만 있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오상욱은 “대표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형들이 엄청 단단해 ‘못 이기는 벽’이라 생각했다. 사실 선배가 몸이 좋을 땐 후배가 못 이긴다. 처음에는 열심히만 하면 형들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훈련의 영역을 넘는 경험과 배포가 필요하더라. 특히 사브르는 후루룩하면 다섯 점씩 줘버리니까 뒤집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그렇게 대단했던 형들이 어느 순간 기량이 떨어지더라. 형들에게 ‘에이징커브’가 올 때 5, 6등 하던 후배들이 버텨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톱(top)을 찍었던 사람들도 다 내려온다. 나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후배들과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만나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광=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