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금리’에 쓴소리, 강태수 교수 정부가 은행 팔 비틀어 금리 왜곡… 해외서 이런 나라 신뢰할 수 있나 금감원이 모든 금융기관 감독 독점… 무소불위 감독당국 누가 감독하나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지낸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21일 “정부가 시장금리에 개입하면 통화정책을 통한 금리 조정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감독원이 독점하고 있는 금융감독 기능의 구조 개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요즘 금리가 수상하다. 자고 일어나면 대출금리가 오른다. 지난달 이후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린 게 20차례나 된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따라 대출금리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내 집 마련을 계획하던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지난달 초 금융당국이 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모아 대출을 관리하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몇 달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은행들은 금리 인하 경쟁을 펼쳤다. 정부는 여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비교해 싼 이자로 갈아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를 주도한 공무원들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며 칭찬했다. 대출금리를 내린 것도, 몇 달 뒤 올린 것도 은행이 아닌 정부인 셈이다.》
21일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를 만나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관치 금리’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물어봤다. 강 교수는 한국은행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통화금융팀장, 금융안정분석국장, 금융안정 담당 부총재보를 지낸 금융 전문가다. 그는 정부의 대출금리 개입에 대해 “금융 선진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고채 금리, 시장금리의 하락은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다. 시장 메커니즘은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 수요와 공급 등을 통해 결정돼야 하는데 대출 역주행은 이를 거스르는 현상이다. 당국이 창구지도를 하고 은행의 팔을 비트는 식으로 대출금리 인상을 유도하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정하고, 그에 따라 시중금리가 움직이고, 이에 맞춰 기업과 가계가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통화정책의 파급 경로인데 완전히 왜곡돼 버렸다. 시장 참여자들도 금리가 오를지 내릴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나.
“글쎄 후진국에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알 만한 금융 선진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몰라 다른 동료 전문가들에게 그런 사례가 있나 물어봐도 피식 웃기만 하더라. 개입하더라도 한국처럼 모두가 알 정도로 이렇게 대놓고 파열음을 내면서 하진 않을 것이다. 행정지도 방식의 직접적인 금리 통제는 아주 후진적이다. 이렇게 했을 때의 파장과 반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나.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돈잔치’ 발언 이후 관치가 심해졌다는 지적이 있다.
“대통령이 지적한 부분은 일리는 있다. 우리 금융기관들이 예대마진에만 의존해 이자 장사에 몰두해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관치에 안주해 온 은행들이 반성할 부분도 많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 이후 감독 당국이 우리 금융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게 할지를 고민해야 했는데 손쉽게 은행 때리기에만 치중한 게 문제다. 소규모 특화 은행 육성 등의 혁신 노력도 했지만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를 겪으면서 쑥 들어가 버린 건 아쉽다.”
―금융감독 당국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가.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금감원 스스로의 지배구조도 돌아봐야 한다. 금감원이 모든 금융기관의 감독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럼 금감원은 도대체 누가 감독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금감원은 금융감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은행·증권·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을 합친 통합감독기구로 1999년 출범했다. 영국의 금융감독청(FSA)을 모델로 했다. 하지만 정작 FSA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2013년 해체됐다. 건전성 감독 업무는 영국은행(BOE) 산하의 건전성감독청(PRA)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감독은 독립기구인 금융행위감독청(FCA)으로 이관했다. 모든 감독 기능이 한 지붕 아래 있으면 상호 견제가 안 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이 전면에 나서는 느낌이다.
“금감원이 상법 개정,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등의 이슈를 주도하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 챙겨야 할 일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카카오페이가 고객 동의 없이 40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넘긴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도 감독 당국이 몇 년 동안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티몬·위메프 환불 중단 사태도 사전에 대비하지 못하고 뒷북을 치고 있다. 국민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고 단속하라는 것이다.”
“외부 출신이 오면 조직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부분도 있다고 본다. 다만 수사기관의 관점이 아니라 금융계의 문화나 문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부에서 원장의 행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국민에게 그렇게 인식된다면 스스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에서 한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이 나온다.
“미국에서도 논란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결정 과정에 대통령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연준은 독립적인 기관이며 대통령으로서 난 연준이 하는 결정에 절대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을 했다. 해리스 후보의 말이 맞다고 본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정부 얘기는 참고만 하고, 경제 및 금융 상황과 데이터에만 집중해서 독립적으로 금리 결정을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원팀임을 강조하는 이른바 ‘F4(Finance4·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감원 한은 수장을 의미)’ 회의는 한은의 독립성을 고려할 때 어색해 보인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얼굴을 맞대고 악수하는 모습, 일본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이 만나는 그림이 상상이 되나.”
―통화정책과 금융정책이 엇박자를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의 의견이 다른 것은 정상이다. 사안을 똑같이 볼 수는 없다. 다만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인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에서는 방향을 맞춰 함께 해법을 모색했어야 했다. 한은이 통화 긴축을 하는데 정부는 대출금리를 낮춰 버리고, 이제 기준금리를 내리려는데 당국이 대출금리를 올리는 식의 엇박자는 문제다. 한쪽에서 에어컨 틀고, 다른 쪽에선 보일러 켜는 식이면 정책이 작동될 리 없다. 고금리 상황에서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는 확실히 해결하고 갔어야 했는데 아쉽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연착륙을 대전제로 깔고 저금리 정책대출을 크게 늘리고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를 늦추면서 실기한 측면이 있다.”
―9월 미 연준의 금리 인하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미국과 한국의 물가와 금융 안정 상황은 다르다. 방향성은 같다고 해도 속도와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정부의 개입으로 통화정책의 효과가 많이 왜곡된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은이 시장과 커뮤니케이션을 굉장히 섬세하게 해야 할 시점이다. 22일 한은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현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부동산 가격을 부추길 위험이 더 크다”고 했다. 결국 향후 인하를 하더라도 가계부채,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을 만큼만 내리겠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다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폭이 예상보다 더 커진다면 한은이 이 같은 스탠스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통화금융정책 당국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 가계부채 문제 해결이다. 미래 세대인 청년층이 굉장한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책 당국자들은 항상 미래 세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정책을 펼 때마다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 ‘이렇게 하면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느냐’를 계속 되물어야 한다. 이러면 내 집 마련 쉽게 해주겠다고 50, 60대에게까지 50년 만기 주담대를 내주고, 대출 총량 규제를 한다며 청년들의 대출까지 일괄적으로 막아버리는 식의 정책은 나오지 않는다. 단기적 관점에서 냉탕 온탕을 오가는 식의 정책 운용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강태수 교수△ 1958년 서울 출생
△ 1993년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 1982∼2014년 한국은행 통화금융팀장, 금융안정분석국장, 부총재보
△ 2012∼2014년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위원
△ 2014∼2020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2020년∼현재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
△ 2022년∼현재 금융위원회 자체규제심사위원장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