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창 경제부 차장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어른을 가리킬 때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말을 쓴다. 기업을 두고도 가끔 피터팬 증후군에 빠졌다고 한다.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않고 중소기업에 머무르려 하는 현상을 일컬을 때다. 중소기업이 스스로 성장을 멈추는 건 그게 더 낫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더 큰 기업이 되는 순간 세금 감면을 비롯해 정부로부터 받던 각종 지원과 혜택은 끊긴다. 정부가 쳐 놓은 ‘중소기업’ 울타리를 굳이 벗어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상황은 24년 전부터 지적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0년 내놓은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체 노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당시 OECD는 중소기업 정책을 정부 지원에 의존하게 만드는 데서 벗어나 역동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후 중소기업 지원 문제는 OECD 한국 경제 보고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관가에서는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톤 다운’ 해달라고 하는 게 정부 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올해도 한국 경제 보고서에는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이 과도하게 많다는 판단이 담겼다. 보고서를 쓴 욘 파렐리우센 한국 담당관은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다 합하면 1646개였지만 중소기업 생산성은 계속 뒤처지고 있다”며 “수를 줄인 단순한 시스템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라고 했다. OECD는 1646개의 지원 프로그램을 ‘파편화되고 형편없이 조율된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대기업 일자리가 부족해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가 청년들의 노동시장 이탈이다. 1년 4개월가량 다닌 중소기업을 최근 관둔 20대 A 씨는 “잦은 야근, 상사와의 갈등 등으로 그간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일단은 그냥 쉬고 있다”고 했다. 그처럼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지난달 뚜렷한 이유 없이 그냥 쉰 15∼29세 청년 수는 역대 7월 중 가장 많았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은 무책임하다. 한국 사회에서 첫 직장으로 뚜렷하게 갈라지는 삶의 궤적은 고개만 돌리면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들어가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야근 수당도 제대로 못 주는 중소기업에 다니다가 대기업으로 옮기는 이들을 찾긴 어렵다. 20년 넘게 지속된 OECD의 권고에 이제라도 귀 기울여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느리더라도 그게 더 확실한 청년 일자리 대책이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