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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 캐나다에 팔릴까?…‘엔저 리스크’란 이런 것[딥다이브]

입력 | 2024-08-24 10:00:00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한국 기업. 어디인가요? 글쎄요. 솔직히 선뜻 떠오르는 곳이 없는데요. 일본에서는 아마 이 기업이 꼽힐 겁니다. 세븐일레븐.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편의점 브랜드이죠.

50년 동안 일본인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세븐일레븐이 최근 캐나다 기업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는 소식에 일본 여론이 술렁입니다. M&A가 실제 성사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어쩌다 세븐일레븐이’라는 한탄이 터져 나오는데요. 35년 전과는 정반대 입장이 된 일본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랄까요. 오늘은 세븐일레븐 인수 제안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세계 최대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을 캐나다 기업 알리멘타시옹 쿠쉬타르가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출처 세븐일레븐 재팬 

*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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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팔면 안 돼요”
‘회사는 알리멘타시옹 쿠쉬타르로부터 회사의 모든 발행 주식을 인수하겠다는 구속력 없는 비밀 예비 제안을 받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사회는 이 제안을 검토하기 위해 독립적인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19일 세븐일레븐의 모회사 세븐앤아이홀딩스가 이런 성명을 발표합니다. 알리멘타시옹 쿠쉬타르(줄여서 쿠쉬타르)는 캐나다 퀘벡에 본사를 둔 유통 대기업. 세계적인 편의점 브랜드 ‘서클K’의 운영사입니다.

전 세계 편의점 점포 수로 비교하면 서클K(1만6700개)는 세븐일레븐(8만5000개)의 5분의 1 수준. 그런데 세븐일레븐이 서클K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세븐앤아이홀딩스 주가는 19일 23% 급등, 다음날 10% 하락.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데요. 만약 이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외국기업이 일본기업을 인수하기론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건 확실합니다. 쿠쉬타르가 얼마를 제안했는지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세븐앤아이홀딩스의 현재 시가총액이 5.25조엔(약 48조원)에 달하니까요.

세븐일레븐은 본래 미국에서 탄생한 브랜드이지만, 일본 대형마트 이토요카도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1974년 일본에 들여왔다. 사진은 일본 도쿄에 1974년 문을 연 세븐일레븐 재팬 1호점의 모습. 올해가 일본에선 50주년이다. 1991년에는 경영난에 처한 미국 본사를 인수하면서 완전히 일본 기업이 됐다. 출처 세븐일레븐 홈페이지

주가만 대혼란이 아닙니다. 일본 소비자들 충격은 상상 이상인데요. ‘일본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해외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는 소식에 SNS엔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이런 식이죠.

‘내가 좋아하는 세븐이 아니게 되어 정말 슬퍼요. 매일 이용하는데… 살 수가 없네요.’
‘세븐은 일본의 인프라니까 팔면 안 돼요.’
‘나라를 일으켜서 막아주세요. 절대로 안 돼요.’

일부 소비자의 과장 섞인 반응이 아닙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칼럼엔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제 일본의 편의점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와 함께 일본 ‘소프트 컬처’의 대표이다. (중략) 세븐일레븐 매각은 간판이 바뀌는 데 그치지 않고 50년간 길러온 ‘소프트파워’가 유지되느냐의 문제다.’

편의점이 그 정도로 소중한가, 라고 신기하게 여길 수도 있는데요. 일본에서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합니다. 세븐일레븐은 일본 전국 모든 현에 총 2만개 넘는 점포가 있습니다. 매장을 찾는 고객은 매일 약 2000만명. 100엔대 신선한 커피부터 유명 파티세리의 디저트까지, 없는 게 없는 매장은 현지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필수코스로 통하죠. 돈 뽑는 ATM기기는 물론이고, 세금·전기요금 수납과 복사·인쇄, 소포 발송 서비스까지 제공합니다. 가게들이 사라져가는 시골에선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심지어 지진 같은 재난 상황에서 음식과 물을 제공하는 ‘생명줄’이 됩니다.

일본 세븐일레븐 매장엔 복사뿐 아니라 사진 인쇄, 민원 행정, 보험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는 멀티복사기가 운영 중이다. 편의점의 생활인프라 역할이 상당하다. 세븐일레븐 재팬



세계 1위인데 48조원, 싸다?
이렇게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우량기업이 어쩌다 M&A 타깃이 된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무 싸니까요.

세븐앤아이홀딩스 시가총액을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361억 달러(약 48조원)인데요. 편의점 점포 수나 매출 면에서 뒤지는 쿠쉬타르는 575억 달러(약 77조원)가 넘습니다. 동종업계에서도 세븐앤아이홀딩스 주가는 유독 저평가돼 있죠.

그럼 왜 주가가 낮을까. 일단 회사 내부 원인이 있습니다. 세븐앤아이홀딩스는 그동안 대형마트(이토요카도)와 백화점(세이부) 사업 부진으로 고전해 왔죠. 최근 들어 백화점을 팔고(2022년 말), 마트 규모를 줄이는 등 돈 되는 편의점 쪽에 집중하고 있지만 주가는 영 신통찮았습니다. 인수제안 발표 직전(16일) 주가를 기준으로 보면 1년 전과 비교한 주가 상승률이 -12%. 같은 기간 니케이225 지수가 20%가량 오른 것과 비교하면 성적이 형편없죠. 그만큼 주주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소홀했단 뜻입니다.

이달 5일 블랙먼데이 당시 1600엔까지 추락했던 세븐앤아이홀딩스 주가는 인수 제안 소식이 나온 19일 20% 넘게 급등했다. 구글 금융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데는 당연히 엔저도 크게 작용합니다. 엔화 가치가 최근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역사적인 수준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죠. 해외 기업 입장에선 엔화 약세로 우량 일본 기업을 싸게 인수할 기회가 열린 겁니다.

쿠쉬타르가 인수를 제안한 시점도 절묘합니다. 일본증시가 폭락했던 블랙먼데이(5일),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주가도 52주 최저로 떨어졌는데요.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들어왔으니까요.

쿠쉬타르 공동창립자인 알랭 부샤르 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2005년에 이토 마사토시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창립자에게 인수를 제안했다고 밝혔었죠. 당시 이토 회장은 이를 거부하면서 두 회사 모두 합병을 검토하기 전에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는데요. 그리고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이토 회장은 지난해 사망했고, 쿠쉬타르는 다시 치고 나왔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세븐일레븐은 1만3000개, 서클K는 9000개의 편의점을 운영 중이죠. 합치면 미국 시장에서도 경쟁사인 캐시스제너럴스토어(1만7000개)를 가뿐히 제칠 겁니다.



35년 전 일본의 할리우드 침공
원래 통화가치는 곧 국력입니다. 통화가치가 뚝 떨어졌을 때 기업들이 해외 투자자의 먹잇감이 되는 사례는 많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1989년 일본 소니의 미국 영화사 컬럼비아픽처스 인수.

1980년대 들어 일본산 전자제품과 자동차가 밀려들며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렸던 미국이 찾은 답은 환율 조정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인데요. 250엔이던 달러-엔 환율을 120엔으로 끌어내립니다. 갑자기 미국 달러화 가치가 엔화 대비 절반으로 뚝 떨어진 거죠. 미국으로선 상품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막대한 무역적자를 줄일 묘책이었습니다.

거품경제의 절정이던 1980년대 말, 돈이 흘러넘쳤던 일본 기업과 자산가들은 이 엔고를 이용해 미국 부동산과 기업을 잇달아 사들입니다. 일본 자본의 공세에 대한 두려움이 미국인들 사이에 자리 잡게 되는데요. 그러던 중 1989년 9월, 소니가 컬럼비아픽처스를 34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합니다. 여론은 폭발했죠.

1989년 소니의 컬럼비아픽처스 인수 당시 미국의 정서를 알 수 있는 뉴스위크 표지.

‘일본이 할리우드를 침공하다(Japan invades Hollywood)’. 미국 뉴스위크지는 이런 제목의 표지를 실었습니다. ‘컬럼비아를 사는 건 미국의 영혼을 사는 짓’이라고 비평가들은 말했죠. 많은 미국인들이 국가적 정체성을 흔드는 위협적인 일이라며 분노했습니다.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 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미국 기자는 “컬럼비아가 2차 세계대전에서 히로히토 천황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인 영화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느냐”라고 따져 물었죠(참고로 모리타 회장은 ‘우린 이의 없다’고 답변).

물론 이걸 지켜보는 일본인도 심기가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일본 아사히 신문은 사설에서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거론하며 이렇게 꼬집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미국에서 베짱이를 봅니다. 미국은 번 것보다 더 많이 지출했고 적자가 누적되고 통화가 약화되었으며 이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맹공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본 경제학자 타케우치 노부오의 당시 발언도 인상적입니다.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습니다. 자국 통화를 짓밟기로 선택하면 외국기업이 달러 약세를 이용해 미국 기업을 사들일 거라고 예상해야 합니다.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통화 약세의 주인공이 미국이 아닌 일본이란 게 달라졌죠. 지금의 베짱이는 누구인가요.


다음 인수 대상은 어디?

통화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력을 반영하는 법. 게티이미지

다시 세븐일레븐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인수 제안이 실제로 받아들여지긴 어려울 거라는 게 대다수 의견입니다. 보수적인 일본 기업 정서상 멀쩡한 회사를 외국 자본에 통째로 넘기는 건 상상하기 어렵죠. 세븐앤아이홀딩스 이사회가 판단을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에게 맡겼다고 하지만, 그 9명 중 5명이 일본인입니다. 일본 사회의 상식에 맞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이죠. 쿠쉬타르가 인수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높게 써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경우만 아니라면요.

하지만 설사 성사가 되지 않더라도 이번 인수 제안은 일본 경제에 한 방을 먹였습니다. ‘아무리 우량기업이더라도 이대로 가면 외국 기업에 먹힐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줬죠.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엔화 약세의 큰 리스크입니다.

벌써부터 다음엔 어느 기업이 인수제안을 받을까에 대한 전망이 이어지는데요. 아마도 글로벌, 또는 아시아 시장에서 활발히 사업을 확장하는 일본 기업이 타깃이 될 겁니다. 일본 경제주간지 동양경제는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시총 1.4조엔), 스키야와 하마스시 등 외식 체인을 운영하는 젠쇼(1.1조엔), 라면회사 닛신식품홀딩스(1.2조엔)를 꼽았고요. 해외 헤지펀드들은 이미 닌텐도, 올림푸스 같은 종목을 매수 중입니다. ‘제2의 세븐일레븐’은 과연 어디가 될까요. 일본 자본시장에 긴장감이 더해집니다. By.딥다이브

소니의 컬럼비아픽처스는 사전 준비 없이 무리한 탓에 실패한 M&A 사례로 남았죠. 지금 일본에선 쿠쉬타르가 설사 세븐일레븐을 인수하더라도 깐깐한 일본 소비자 탓에 성공하기 어려울 거란 분석이 벌써부터 나옵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일본인의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브랜드, 세븐일레븐이 캐나다 기업 알리멘타시옹 쿠쉬타르로부터 모든 발행주식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회사 측 입장은 현재 논의 중인 상황. 일본 소비자들에겐 큰 충격입니다.

-성장 둔화와 주가 하락, 그리고 엔저까지 겹치면서 M&A의 타깃이 됐습니다. 해외 기업 입장에선 엔저가 우량 일본 기업을 싸게 살 기회이죠. 35년 전 소니가 미국 컬럼비아픽처스를 인수했던, 당시 상황과는 정반대입니다.

-세븐일레븐이 인수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또 다른 일본 기업이 비슷한 제안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그동안 대체로 ‘구매자’ 입장이었던 일본 기업이지만,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매물’이 될 리스크가 커졌습니다.

*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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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