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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중문학 교수와 함께 읽는 중국 현대詩

입력 | 2024-08-24 01:40:00

◇시는 살아 있다/성민엽 지음/270쪽·1만8000원·문학과지성사





‘내 스물네 해의 삶은/대체 누굴 위해 산 건가요.’

중국 시인 쉬리즈(許立志·1990∼2014)가 2014년 7월 쓴 시 ‘혈육의 정 이야기’의 일부다. 쉬리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11년부터 애플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는 기업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서 일했다. 시를 쓴 뒤 2개월 후인 2014년 9월 쉬리즈는 건물 17층에 올라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쉬리즈가 사망한 뒤 중국 내에선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문제가 논의됐다. 아이폰의 하청 생산 구조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 현대시 비평집인 이 책의 저자는 쉬리즈가 2013년 12월 쓴 시 ‘유제’에서 ‘죽고 싶을 땐/그대, 시를 쓰세요’라고 쓴 점을 언급하며 조심스레 추측한다.

“죽음의 충동이 시 쓰기를 통해 제어되는 것인지, 아니면 시 쓰기가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시인은 그 둘 사이에서 불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울대 중문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중국 현대시의 기틀을 세운 후스(胡適·1891∼1962)부터 여성과 장애인의 시각을 담은 위슈화(余秀華·45)까지 24명의 중국 현대 시인 대표작을 다룬다.

특징은 과한 해석을 경계한다는 것. 예를 들어 원이둬(聞一多·1899∼1946)가 1925년 쓴 시 ‘사수’는 흔히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시인이 중국의 현실을 강렬하게 비판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도랑 가득 절망의 고인 물, 맑은 바람 불어도 잔물결 일지 않네’ 같은 시구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엔 ‘꽃구름’, ‘진주 같은 하얀 거품’, ‘구슬의 웃음소리’ 같은 긍정적 단어도 많이 쓰였다며 해석이 과하다고 지적한다. “내재적 해석을 최대한 탐색하고, 비로소 조심스럽게 외재적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는 저자 덕에 담백하게 중국 현대시를 읽을 수 있게 됐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