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가 벌이는 연쇄 납치 사건… 美 정치 이슈 등 현실 담아 흥미 올해 데뷔 50주년 맞은 스티븐 킹… 작가로서의 삶 담은 해설집도 관심 ◇홀리/스티븐 킹 지음·이은선 옮김/596쪽·2만1000원·황금가지 ◇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베브 빈센트 지음·강경아 옮김/248쪽·3만3000원·황금가지
인적 드문 놀이터 앞 주차장에 밴 한 대가 서 있다. 뒷문을 열고 아스팔트 위에 휠체어 진입판을 연결한 채 80대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 옆엔 그의 부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휠체어 배터리가 나가 수십 분째 진입판을 못 올라가고 있단다.
누군들 모른 척 지나갈 수 있을까. 동네에서 조깅을 하던 젊은 남성이 기꺼이 나선다.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진입판 꼭대기에 다다를 무렵 난데없이 청년의 뒷덜미에 주삿바늘이 꽂힌다. 눈앞이 흐려지고 팔에서 기운이 빠진다. 순간 휠체어에서 뛰어내려 남자를 내려다보는 노인.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1974년 데뷔작 ‘캐리’를 시작으로 반세기 동안 왕성하게 작품을 써온 미국 추리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 사진 출처 스티븐 킹 홈페이지
영화로 만들어진 스티븐 킹의 소설들. 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그것’, ‘그것: 두 번째 이야기’, ‘샤이닝’, ‘닥터 슬립’,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캐리’, ‘미저리’. 사진 출처 워너브러더스 홈페이지
미국 언론으로부터 “스티븐 킹의 소설 중 가장 정치적”이라는 평을 받은 신간에는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 미 의사당 공격 등 최근 미국 사회를 흔든 첨예한 이슈들이 소재로 다뤄진다. 예컨대 작품 속 노부부는 극렬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동성애 혐오주의자다. 2021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이 배경으로 설정돼 백신 접종과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다 죽음을 맞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나온다. ‘2024년에도 트럼프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라는 홀리의 독백이 의미심장하다.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조의를 표하는 조문객 등 팬데믹으로 달라진 미국 사회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 재미있다.
“블룸이 진실을 자백할 수 있도록 정맥마취제를 주사한 뒤 ‘자, 해럴드. 실제로 스티븐 킹의 작품을 몇 개나 읽어보셨소?’라고 묻고 싶어요. 그러면 아마 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대답이 나올 거로 생각합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