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50년 주기 ‘난카이 대지진’ 일어날까… 미야자키 지진 후 ‘대지진 주의보’ “발생 땐 사망-실종자 23만 명 예상”…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의 10배 일부 전문가 “데이터 신뢰성 떨어져… 과장된 예측, 걱정할 수준 아냐” 지자체-기업 중심으로 매뉴얼 마련… 지진 체험 교육 등 실질적 대비도
10일 일본 미야자키현 미야자키 공항에 난카이 해곡 지진을 주의하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설치됐다. 아사히신문 제공
《“지진 일어날까 봐 무서운데, 지금 일본 가도 돼요?”
일본 도쿄에서 거주하는 한국 식품 대기업 주재원 K 씨는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이런 문의를 받는다. 일상생활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고 주위 일본인 또한 개의치 않지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여진다고 했다.
그는 고민 끝에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지만, 일본은 언제라도 지진이 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답했다. 지인 대부분은 예정대로 일본에 여행을 왔다. 하지만 10명에 1, 2명은 여행을 미루거나 취소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전문가들은 난카이 해곡 대지진을 두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불안해할 건 아니지만, 일단 발생하면 상상 이상의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평소 재난 대비를 철저히 해놔야 한다고 당부했다.
● “난카이 해곡 대지진 발생 확률 높아져”
난카이 해곡은 필리핀 북동부 필리핀해 밑의 ‘필리핀해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경계 지점에 있는 수심 4000m의 거대 해곡이다. 필리핀해판이 유라시아판 아래를 밀고 들어가는 형태로 융기가 발생한 곳이다. 지구의 표면은 10여 개의 거대한 지각판으로 이뤄져 있는데, 판과 판이 만나는 불안정한 곳은 거대 지진과 대형 지진해일(쓰나미)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 정부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이 향후 30년 이내 발생할 확률이 70∼80%이고 규모 7∼8에 사망자와 실종자는 23만여 명, 무너지는 건물은 209만 채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로 이어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사망자(간접 사망 포함) 및 실종자가 2만5000여 명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피해가 클지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난카이 해곡 대지진이 발생한 지 78년이 지났으니, 이제부터는 걱정해야 할 때라는 논리다.
일각에서는 이런 예측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지적도 한다. 올해 2월 하시모토 마나부(橋本學) 도쿄전기대 특임교수팀은 일본 학술지 ‘자연재해 과학’에 ‘30년 이내 70∼80%’라는 확률에 대해 “데이터 신뢰성에 문제가 있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의 지진조사위원회 측은 “발생 확률을 재검토할 예정은 없다”고 밝혔다.
난카이 해곡 대지진 못지않게 일본에서 걱정하는 지진은 ‘수도권 직하 지진(도시 바로 아래에서 발생하는 지진)’이다.
공영 NHK방송은 2019년 12월 7회에 걸쳐 다큐멘터리 NHK 스페셜 ‘체감 수도 직하 지진’을 방영했다. 프로그램에서 일본 정부 및 학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향후 30년 이내에 70%의 확률로 도쿄 혹은 인근에서 규모 7.3의 대지진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사망자는 2만3000명, 경제 피해액은 95조 엔(약 871조 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1923년 9월 조선인 학살 참극이 벌어진 간토 대지진(규모 7.9)이 대표적인 수도 직하 지진이다.
동일본 대지진은 진앙이 대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에 쓰나미가 닥치고 이에 대한 정부, 도쿄전력 등의 안일한 대응이 겹치면서 인류 역사에 기록될 방사능 참사를 불러왔다.
● 사재기 움직임 속 무덤덤 반응도
9일 일본 가고시마현 시부시시의 한 주민이 상점에서 비상 재난 키트를 살펴보고 있다. 하루 전 인근 미야자키현에서 규모 7.1 지진이 발생한 후 난카이 대지진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많은 시민들이 재난용 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시부시시=AP 뉴시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당초 9일부터 예정됐던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순방을 전격 취소하고 국내에 머물며 지진 대응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시코쿠 등 난카이 해곡 인근 지역에서는 생수, 통조림, 즉석밥 같은 상품에 대한 ‘사재기’가 발생해 편의점 등의 매출이 평소보다 2∼5배로 늘었다.
다만 도쿄 등 대도시에서 일본인들은 대체로 무덤덤한 분위기다. 지난해 일본 기상청 기준 진도 1(흔들림을 약간 느끼는 정도) 이상 지진이 지난해에만 2227회, 진도 4(대부분의 사람이 놀라고 매달린 전등이 크게 흔들리는 정도) 이상은 41회에 달할 정도로 잦기 때문에 지진은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상’에 가깝다. 낮게 깔린 구름이 지진 전조 현상이라는 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와 불안해하는 사람이 일부 있었지만, 일본 기상청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하며 불안 잠재우기에 나섰다.
도쿄대 방재 정보연구센터가 미야자키현 지진 이튿날인 9일부터 11일까지 거대 지진 주의가 발령된 지역의 성인 940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의를 인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83%였다. 다만 21%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거대 지진이 발생하면 최대 34m의 쓰나미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고치현 구로시오(黑潮)에서는 거대 지진 주의가 발표된 뒤 마을 전역에 ‘고령자 피난’을 당부하며 피난소 32곳을 설치했지만, 실제 피난에 나선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다음 날 홀몸 고령자 등 230명에게 전화를 하거나 방문해 피난을 당부했지만, 피난자는 8명에 그쳤다. 특별한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민들이 냉정하게 대응했다는 평가와 최악의 상황이 예상되는데 대응이 미진했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난카이 해곡 대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대 지진 주의’가 내려진 분석 및 통계 수치를 보면 지나치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1904∼2014년 110년간 일본에서 규모 7.0 이상 지진이 일어난 1437회 중 1주 이내에 규모 8.0 이상 거대 지진이 일어난 경우는 6번 있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도 그중 하나다. 확률로 치면 1437분의 6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수백 차례에 한 번꼴로 거대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수치는 평시와 비교하면 거대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몇 배 높은 수준이다.
야모리 가쓰야(矢守克也) 교토대 방재연구소 교수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임시 정보(거대 지진 주의)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는데 이번 발표를 계기로 방심하고 있던 상태에서 깨어나게 됐다”고 평가했다.
● 매뉴얼 철저 준비해 재난 대비
일본에서는 이사 후 전입신고를 하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작한 ‘방재 매뉴얼북’과 재난 대비 관련 물품을 지급한다. 도쿄 시나가와구에서 제공하는 100쪽 분량의 ‘방재 핸드북’에는 ‘침실에선 베개나 이불로 머리를 보호한다’ ‘엘리베이터라면 모든 층 버튼을 누른 뒤 정지한 층에 내린다’ ‘정전 단수 발생을 전제로 피난용 생활용품을 비축한다’ 등 행동 요령 및 준비 사항을 자세히 담았다.
도쿄에서는 유치원, 초중학교에서 연 11회 피난 훈련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직장인은 해당 직장에서 연 2회 반드시 재난 대피, 소방 훈련을 받는다.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신이 앉는 의자 등받이에 접이용 방재 모자를 끼워둔다. 지진이 나면 바로 손을 뻗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도쿄 당국은 또 조례를 통해 사업체에 재난 대응을 위해 직원들이 3일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비축하도록 노력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키지 않는다고 처벌을 받는 건 아니지만, 향후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물, 채소 주스, 건빵 등을 키트로 비축해 둔다.
인터넷이나 언론으로만 접하는 지진을 체감할 수 있는 시설도 곳곳에 있다. 도쿄 오다이바 인근에 있는 재난 체험 교육시설 ‘소나에어리어 도쿄’가 대표적이다. 규모 8.0의 수도 직하 지진이 일어나면 도쿄가 어떻게 되는지, 시민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전시물 및 체험 시설 등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