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말한다
보이는 것을 다 믿지는 마라
형광등이 말한다
말귀가 어두울수록 글눈이 밝은 법이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말한다
술술 풀릴 때를 조심하라
수도꼭지가 말한다
물 쓰듯 쓰다가 물 건너간다
치약이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변기가 말한다
끝났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라
―오은(1982∼ )
집에 영영 혼자 있고 싶지 않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다. 혼자가 되면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혼자가 되면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사물과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타인의 목소리가 소거되고, 나마저 입을 다물면, 세상 곳곳에서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시를 보면 예전에는 ‘그것’이라고 뭉뚱그려지던 대상들이 현자처럼 등장해 자신의 존재를 건 명언을 남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지. 끝난 그 지점이 바로 출발점이지. 흔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표어처럼 걸고 존재하는 화신들이 말한다니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 시를 앞에 놓고 ‘사람은 왜 지구에 왔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존재의 의의를 모르는 우리더러 저런 목소리를 들어보라는 그런 기회가 아니었을까.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