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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공직자 선물은 이렇게’ 뇌물 가이드 같은 권익위 카드뉴스

입력 | 2024-08-23 23:24:00



‘직무와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 원까지 선물도 가능하다’ ‘추석에 공직자에게 선물하려면 8월 24일∼9월 22일 30일간 택배 발송과 수령이 이뤄져야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다음 달 추석을 앞두고 ‘청탁금지법 바로 알기’라는 카드 뉴스를 제작해 21일 공개했는데, 거기에 담겨 있는 표현들이다. 마치 공직자에게 선물을 하라고 조장하는 듯한 내용이다. 카드 뉴스는 이번에 직무 관련성이 있는 공직자라도 농수산물에 한해 평소 15만 원, 명절 기간에는 30만 원까지 선물을 허용한다며 이번에 상향된 선물가액을 홍보했다. 덧붙여 30일간의 추석 선물 기간까지 친절히 안내했다. 명절 선물이 오가는 시기에 혼란을 줄이기 위한 취지라지만 청탁금지법이 허용한 선물 범위를 세세히 나열해 ‘뇌물 가이드’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직자인 친족에게는 금액 제한 없이 선물 가능하다’ 등의 내용도 담겼다. 그러면서 친족의 범위를 ‘8촌 이내 혈족이나 4촌 이내 인척, 배우자’라고 안내했다. 직무 관련성만 없다면 공직자에게 100만 원짜리 선물을 할 수도 있고, 증조할아버지만 같은 8촌 이내 공직자가 있다면 만난 적이 없어도 마음껏 선물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상품권을 선물하려면 금액 상품권은 안 되고 물품으로 교환하는 기프트콘은 괜찮다고 했다. 공직자에게 선물을 해선 안 된다는 상식을 가진 대다수 국민들로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권익위는 이번 카드 뉴스가 매년 명절마다 반복 공지했던 내용과 같고 청탁금지법 시행령을 쉽게 풀어 썼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종결 처리 등으로 질타를 받는 권익위가 청탁금지법을 희화화했다는 비판까지 자초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청탁금지법은 ‘벤츠 여검사’ 사건처럼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처벌할 수 없는 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도입됐다. 원칙적으로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금지하되 사회 상규를 법으로 규제하는 부작용을 고려해 일부 예외를 허용한 것이다. 법의 도입 취지를 생각한다면 공직자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한 카드 뉴스는 부적절하다. 반부패 총괄 기관인 권익위가 우리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되레 후퇴시키는 것 같아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