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전력이 2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녹아내린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시험 반출할 계획이었는데, 시작도 못 했다. 준비 작업 중 실수가 발생해 중단했다고 한다. 이날 작업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이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난 지 13년 만에 처음이었다. 시험 추출하려던 양은 3g 미만이었다. 원전 내 격납 용기 안에 방사선을 방출하는 데브리가 880t가량 있는데, 작업 첫날부터 차질을 빚어 2억9000만분의 1도 못 꺼낸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폐로(閉爐)의 최대 난관으로 꼽히는 게 데브리 반출 작업이다. 원전 사고 당시 핵반응이 일어나는 압력 용기 속 노심이 용암처럼 녹아 바닥을 뚫고 격납 용기로 흘러내렸다. 바로 아래에 곱게 쌓여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만 다시 굳으면서 떡이 진 채 여기저기로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1년부터 반출 계획이 있었지만 3번이나 연기됐다. 이번엔 약 22m 길이의 로봇 팔에 손톱 형태의 장치를 달아 일부를 집어낸 뒤 성분을 분석하고 반출 방법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했다.
▷격납 시설 내 방사능이 워낙 강해 사람은 접근할 수 없다. 2015년 투입한 관측 로봇도 5시간 만에 고장이 났다. 2022년 2월에 이르러서야 1호기에서 처음으로 로봇이 핵연료로 보이는 퇴적물을 발견한 수준이다. 올 1월엔 원자로에 로봇 팔을 넣으려 했지만 배관이 퇴적물로 막혀 있어 실패했다. 격납 용기가 손상된 것도 꺼낼 수단을 제한한다. 수천 km 떨어진 곳에서 로봇을 이용해 수술까지 하는 세상이지만 그건 수술실이라는 완벽히 통제된 환경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1986년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 발전소는 감당을 못해 그냥 콘크리트제 석관(石棺)으로 덮었다. 그 아래 묻힌 핵연료는 250t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엔 시간이 10년 정도 흐르면 어떻게 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지만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못 하고 있다. 그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위험이 줄어들 것을 기대할 뿐이다. 후쿠시마 원전도 차라리 석관으로 덮으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복구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뿐더러 후쿠시마 원전은 아래에 지하수가 많은 탓에 물이 오염돼 유출되는 걸 막기 어렵다고 한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