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지진 때 日에 자회사 둔 기업 피해 반도체-車 등 집중된 난카이 지역 지진 경보 한일 간 형성된 제조 공급망 타격 대비해야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이달 8일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일본에 비교적 큰 규모의 지진 발생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9일에는 도쿄 가나가와현에 규모 5.3의 지진이 일어났고, 10일에는 홋카이도 북동쪽 해역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19일에도 도쿄 이바라키현에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일본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일본 여행을 가면 한 번쯤 지진을 경험하고 왔을 것이다. 문제는 여행을 가고 안 가고가 아니라, 1995년 한신 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이 일본에서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규슈 미야자키현에서 발생한 지진 이후 일본 정부는 난카이 지역의 대규모 지진 발생 경보까지 내린 바 있고, 연이은 대규모 지진 발생으로 인해 계속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난카이 지역의 대규모 지진 가능성에 일본 정부가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역에 일본의 전통적인 제조업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자 및 반도체, 화학 및 제약 등 주요 산업단지가 난카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 TSMC가 최근 일본에 세운 반도체 공장도 난카이 지역에 있다. 이 지역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다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제조 공급망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먼 미국에까지 영향을 주었는데, 가까운 이웃 나라인 우리나라에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일본이 한국에 세운 자회사, 그리고 우리 기업이 일본에 세운 자회사 간 공급망 체계를 통해 그 피해가 파급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필자는 통계청의 기업활동조사 자료를 사용하여 실증 분석한 바 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일본 자회사의 경우 관계 회사로의 해외 수출이 감소하였지만 한국 내의 매출을 늘려 총매출 감소를 방어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일본에 자회사를 세운 국내 모기업들은 총매출이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요컨대, 미국의 경우와 달리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한국에 소재하는 일본 자회사가 아니라 오히려 일본에 자회사를 둔 국내의 모기업들에 타격을 준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한국과 일본 간 제조업 분야의 무역과 투자 구조의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주요 소재와 자본재, 그리고 기술을 수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양국 간 제조 가치 사슬의 이점을 활용해 온 우리 기업들이 오히려 이제는 일본 지진 리스크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난카이 대지진 경계를 해제했다. 일본의 대지진 발생 가능성으로 인한 일본 국민들의 불안과 경제적 피해에 대해 이웃 국가인 우리나라가 함께 걱정하고 협력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의 지진이 우리나라에까지 재난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간 형성된 제조 분야 공급망이 단절되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까지 사전에 최대한 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얼마 전 정부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정책을 수립한 바 있다. 특히, 공급망 기금 마련을 통한 피해 기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 정책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피해가 발생한 이후 대처 방안이라는 것이 한계점이다. 이번 일본 지진을 계기로 우리 기업들은 이미 지진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앞으로 한일 간 글로벌 공급망 구조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해외 투자 다변화를 위한 노력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