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도시 싱가포르
캐피타스프링 빌딩의 ‘그린 오아시스’.17층부터 20층까지 나선형 산책로를 숲처럼 꾸몄다.
● 식물을 품은 빌딩
캐피타스프링 빌딩의 옥상 정원.
벽면을 녹지로 꾸민 파크로열컬렉션 호텔.
스카이라이즈 그리너리는 기후·생태·사회적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싱가포르의 범국가적 10개년 계획인 ‘싱가포르 그린 플랜 2030’의 핵심 기둥이다. 싱가포르는 ‘자연 속 도시(City in Nature)’ 비전에 따라 도시에 더 많은 나무를 심겠다고 한다. 초록빛 건물은 매력적인 동시에 도시의 온도를 낮춘다. 캐피타스프링 빌딩은 JP모건 등이 입주한 사무용 건물이지만 그린 오아시스와 옥상 정원은 대중에게도 열린 공간이다. 예약하면 누구든 둘러보며 정원 도시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새 공원인 버드 파라다이스.
● 싱가포르에서 ‘초록의 일상’
여행은 숙소를 고를 때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초록의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장소를 고심해 골랐다. ‘모노클’과 ‘월페이퍼’ 등 세계적 트렌드 잡지들이 추천한 3성급 숙소다. 숙박 예약 사이트에 ‘화장실이 야외로 연결돼 방에 벌레가 다닌다’는 후기가 있긴 했지만, 일반 호텔과는 확연히 다른 개성이 있어 보였다.
숙소를 잡을 땐 모르던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싱가포르 초대 총리인 리콴유(李光耀·1923∼2015)가 생전에 살던 집이 불과 10m 이내 지척이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지금의 초록빛 싱가포르를 이룩한 리콴유를 떠올렸다.
포토존으로 유명한 포트캐닝 공원의 나무 터널.
비 내리던 일요일 아침에는 싱가포르 식물원 근처 뎀프시힐로 향했다. 19세기 영국군의 캠프로 사용됐다가 이제는 세련된 카페와 갤러리 등이 들어선 숲속 마을 같은 지역이다. ‘P.S.카페’에 들어서자 빗물을 머금어 초록이 더욱 선명해진 나무들이 통창을 통해 가득 시야에 들어왔다. 카푸치노 커피를 시켰더니 우유로 나뭇잎 모양을 띄워 내왔다. ‘자연을 고객에게 더 가까이’라는 철학을 가진 이 상업 공간은 시내 여러 매장에서 수직 녹화를 통해 무성한 실내 녹지를 선보인다.
● 정원으로 돌보는 정신 건강
KPMG 웰니스 가든의 치유 정원.
그 정원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졸졸 물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바위틈 사이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파스텔 색상의 꽃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다양한 질감의 잎사귀들을 만져 보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조각품을 천천히 느끼고 감탄해 보세요.’ 싱가포르의 치유 정원은 쾌적한 정원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가드닝 프로그램에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심신의 회복을 돕는다.
서울의 한강공원 같은 싱가포르의 이스트 코스트 파크에 있는 ‘KPMG 웰니스 가든’도 3년 전 치유 정원을 조성했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차원으로 참여한 정원이다. 싱가포르국립대 건강시스템(NUHS), 알츠하이머협회와 협업해 전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민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현재 13곳인 치유 정원을 2030년까지 30곳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두루 정원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미래로 향하는 정원
싱가포르 식물원은 싱가포르 국민의 자부심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1859년 설립된 싱가포르 식물원은 오전 5시부터 밤 12시까지 문을 열어 조깅과 피크닉을 위해 찾아오는 시민들이 많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세계 식물원 중에서는 영국의 큐 가든, 포르투갈 코임브라대 식물원에 이어 세 번째다.
싱가포르 식물원에는 여러 주제의 정원이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난초 전시원인 ‘내셔널 오키드 가든’이 그중 제일로 꼽힌다. 이곳에서 다양한 난초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이 식물원은 엘리자베스 여왕 등 전 세계 유명 인사 방문객들의 이름을 난초에 붙이는 ‘VIP 난초 프로그램’의 명성이 높다.
미래형 정원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슈퍼트리 그로브.
풀러턴베이 호텔의 루프톱 ‘랜턴바’에서 마리나베이샌즈 주변 야경을 감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싱가포르에 머무는 동안 ‘생명 다양성’, ‘공동체’, ‘미래’라는 세 단어를 참 많이 들었다는 사실을. 요즘 싱가포르는 고령화 사회에서 공동체가 참여하는 정원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의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라는 고민이 요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싱가포르 여행이 준 선물일 것이다.
글·사진 싱가포르=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