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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체중 증가, 유방암 유발할 수 있어요”[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입력 | 2024-08-24 01:40:00

차치환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유방암 민병미 씨
류머티즘 진단 후 극심한 스트레스… 샤워하다 멍울 발견, 유방암 진단
수술-항암-방사선 치료 마치고, 항호르몬제 복용하며 호르몬 조절
차 교수 “유쾌한 성격이 투병에 도움”… 민 씨 “의사의 배려가 투병 의지 높여”



차치환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왼쪽)는 유방암에 걸리더라도 일찍 발견하고 잘 관리하면 완치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슬기로운 투병’을 권했다. 유방암 수술과 항암 및 방사선 치료를 모두 끝내고 지금은 항호르몬 치료 중인 민병미 씨는 의사를 무한 신뢰할수록 환자의 투병 의지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민병미 씨(62)는 2022년 10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를 모두 마치고 현재는 항호르몬제를 매일 먹고 있다. 완치까지는 갈 길이 멀다. 민 씨 치료를 맡은 차치환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는 “유방암은 다른 암보다 복잡하다. 수술 후 10년은 지나야 완치 판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8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여전히 ‘암 환자’인 셈이다.

그래도 차 교수와 민 씨 모두 긍정적이다. 지금처럼만 관리하면 충분히 완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 교수는 “민 씨는 가장 모범적으로 암 투병을 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민 씨의 투병기를 들어봤다.

● 스트레스가 암 유발?

2022년 5월이었다. 왼쪽 허벅지에 통증이 나타났다. 민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한쪽에 쌓인 짐을 다리로 툭 밀 때 문제가 생겼다. 무릎에서 ‘찡’ 소리가 난 것 같았다. 이후 수시로 무릎이 아팠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으면 좋아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팠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해 8월 초, 여름휴가를 해외로 떠났다. 현지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막 내리려는데 다리가 부어올랐다. 통증이 밀려왔다.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패키지 여행이라 돌아오지도 못하고 6박 7일 일정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귀국하자마자 정형외과 의원에 갔다. 염증 완화 주사를 맞았다. 증세가 사그라드는 것 같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통증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왼쪽 다리만 아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른쪽 다리까지 붓고 아팠다. 잘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체중도 부쩍 늘었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해졌다. 류머티즘 질환 진단까지 받았는데 왜 병을 고치지 못하는지 화가 났다. 자꾸 씩씩거렸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화내다 보면 눈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민 씨는 “하루 종일 다리 문제로 신경이 곤두섰다. 평생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때였다”라고 말했다.

8월 말, 샤워하던 도중에 오른쪽 가슴 아래쪽에서 딱딱한 멍울이 만져졌다. 어떤 날에는 멍울이 있는 부위에서 통증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후 한양대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차 교수는 “가슴에서 딱딱한 멍울이 만져지는 건 유방암의 전형적인 신호다. 멍울이 만져진다면 민 씨처럼 지체하지 말고 검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 씨는 “류머티즘 질환으로 받은 스트레스가 유방암이 생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말 그럴까. 차 교수는 “민 씨처럼 유방암 발병 직전에 극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환자 사례가 꽤 많다”고 했다. 이어 “급격한 체중 증가도 유방암이 생기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폐경 이후 여성에게 급격한 체중 증가는 유방암 발생의 큰 원인에 든다.

● 2cm 암 덩어리… 투병 시작

암 덩어리는 다행히 1개뿐이었다. 크기는 약 2cm. 1기와 2기 사이였다. 암 덩어리가 조금 크기는 했지만 피부와 가까운 지점에 있었다. 만약 암이 더 깊은 곳에 생겼다면 처음부터 딱딱한 멍울이 만져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유방암에는 치료 경과가 좋지 않은 이른바 악성 암이 여럿 있는데, 민 씨는 비교적 치료가 잘 듣는 ‘순한’ 암이었다. 차 교수는 “암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나마 여러 면에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암 덩어리가 있는 부위 4cm 정도를 절제하고 암을 제거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암 전이를 예방하기 위해 겨드랑이를 통해 임파선을 제거하는 수술도 진행했다. 만성 염증이 있는 담낭도 제거했다. 수술에는 총 3시간이 소요됐다.

수술은 잘 끝났다. 암 덩어리가 1개인 데다 완벽하게 제거했기에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차 교수는 항암 치료를 결정했다. 차 교수는 “일단 암 크기가 2cm로 작지 않았고, 재발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나이였기 때문에 항암 치료를 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항암 치료는 2023년 1월부터 시작했다. 민 씨가 류머티즘 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에 항암 치료에 더 신중해야 했다. 항암 치료로 인해 심장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2박 3일 동안 입원해 몸 상태를 살피면서 주사 맞는 방식으로 치료했다. 3주 간격으로 4회 진행했다.

● 현재도 암 극복 중

항암 치료 과정은 쉽지 않았다. 구역질이 나오고 머리가 빠졌다. 입맛은 사라졌다. 너무 입맛이 없어 암 환자라면 먹지 말아야 할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발효식품을 먹었다가 설사하기도 했다. 차 교수는 “암 환자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에 취약하다. 발효식품을 먹었다가 장염에 걸릴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옳다”고 했다.

그래도 암과 싸우기 위해 억지로 먹었다. 어떤 때는 하루에 열 끼를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체중이 16kg이나 늘었다. 이번에는 체중을 줄여야 했다. 이를 위해 민 씨는 일에 더 매진했다. 민 씨는 의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오래 일하면 어지럽고 식은땀이 났지만 일을 관두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힘들어서 자꾸 눕게 됐습니다. 그러면 운동도 거의 못 했죠.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더 열심히 일한 것이죠.” 차 교수는 “암 환자에게는 운동을 권장하는데,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항암 치료가 끝나자마자 그해 4월 곧바로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입원하지 않고 매일 병원을 방문해 20분씩 받았다. 정해진 방사선량을 초과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치료한 것. 총 30회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방사선 치료와 동시에 항호르몬 치료도 시작했다. 민 씨의 유방암은 여성호르몬 수용체가 강한 유형이었다. 이 경우 여성호르몬이 암세포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호르몬을 낮춰주는 항호르몬제를 최소한 5년 동안은 먹어야 한다. 항호르몬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류머티즘 질환이 있으면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무릎이 아프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래도 민 씨는 매일 항호르몬제를 먹는다.

민병미 씨는 암과 싸우면서 삶을 즐긴다. 원래 미술가였던 민 씨가 10여 년 만에 다시 붓을 들었다. 민병미 씨 제공 

삶은 윤택해졌다. 민 씨는 10여 년 전 대한민국예술대전(국전) 서예 부문에서 입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동안 글씨를 쓰지 못했다. 암과 투병하면서 다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단다. 올 4월, 다시 붓을 들었다.

● 슬기롭게 암 투병해야

민 씨는 6개월마다 재발 여부를 살피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수술을 받고 5년이 지날 때까지는 6개월마다, 그 후에는 1년마다 병원을 찾게 된다. 재발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차 교수는 “수술 후 10년이 지나 완치를 선언한다고 가정한다면, 그때까지 암이 재발할 확률은 10∼20%”라고 말했다. 이어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고 식단을 관리하며 항호르몬제를 빠지지 않고 복용한다면 재발 확률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암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재발이다. 민 씨 또한 “재발이 가장 걱정된다.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재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막연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공동체 등의 격려가 두려움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차 교수는 ‘슬기로운 투병’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환자의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차 교수는 “민 씨의 경우 주변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들 정도로 유쾌하고 긍정적이다. 암 투병에 큰 도움이 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또 질병에 대해 환자 스스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병에 대해 많이 알수록 의사와 환자의 소통이 수월해집니다. 이 경우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가능성도 커지죠.”

민 씨는 투병에 필요한 요소로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꼽았다. 의사를 무한 신뢰하는 순간부터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얘기다. 민 씨는 “차 교수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수술이 끝난 후에는 휴일인데도 입원실까지 찾아와 손을 잡아 줬다”며 “이런 배려가 투병 의지를 높여 줬다”고 설명했다. 권위적이지 않은 의사일수록 암 환자와의 소통이 원활해진다는 뜻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