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패싱’ ‘특혜 조사’로 신뢰 잃은 검찰의 ‘디올백 수수 의혹’ 수사 美 대배심이나 日 검찰심사회처럼 수심위가 검찰권 남용 통제할 수 있어야
천광암 논설주간
이원석 검찰총장이 23일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 사건’을 직권으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했다. 이 총장이 5월 본격적인 수사 의지를 내비치기가 무섭게 대통령실과 법무부가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를 ‘친윤 라인’으로 교체하고, 이어 교체된 지휘부가 총장을 ‘패싱’하고 ‘비공개 출장 조사’를 벌인 뒤 무혐의 결론을 내기까지 용산의 의중대로 수순을 밟아온 듯한 검찰 수사가 마지막 변수를 만났다.
이 총장은 앞서 올 1월 핼러윈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를 받은 김광호 당시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수사팀이 불기소 의견을 내자, 직권으로 수사심의위에 회부한 적이 있다. 수사심의위는 기소를 권고했고, 검찰은 이에 따라 김 청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총장이 이 사례를 얼마나 깊이 염두에 뒀는지는 알 수 없다. 일단 공개된 발언만 보면 김 여사에 대한 수사팀의 불기소 결정을 뒤집겠다는 의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대검에 따르면 “이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증거 판단과 법리 해석이 충실히 이뤄졌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공정성을 제고하고 더 이상의 논란이 남지 않도록 매듭짓는 것”이 수사심의위 회부 목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왕설래에도 수사심의위 회부는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우선 법조계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민간 분야의 인사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 위원들이 물러가는 총장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 또한 ‘총장 패싱’에서 ‘특혜 조사’ 논란까지 신뢰를 잃을 대로 잃은 검찰 수사의 무혐의 결론이 그대로 확정되는 것보다는 수사심의위라도 한 번 거치는 것이 공정성 측면에서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다.
제도의 연원을 되짚어 봐도 수사심의위 회부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수사심의위 제도는 2017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슈가 제기되자 검찰이 내놓은 ‘셀프 개혁안’이다. 검찰은 이에 앞서 2010년 현직 검사들이 건설업자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사건으로 큰 파문이 일자, “기소권에 대한 국민의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수사심의위의 ‘이전 버전’에 해당하는 검찰시민위원회 제도를 도입했었다.
수사심의위를 도입하면서 검찰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되는 미국의 대배심과 일본의 검찰심사회를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는데, 두 제도와 비교해 보면 수사심의위는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배심이 의무화된 주에서는 중요 사건 기소의 대부분을 검사가 아닌 대배심이 결정한다. 단순 자문기구인 한국의 수사심의위와 달리 독자적인 수사권도 갖고 있다.
일본의 검찰심사회도 법적인 구속력을 갖고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걸러주는 실질적인 기능을 한다. 특히 제도의 활용 면에서 한국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수사심의위가 소집된 횟수는 7년간 통틀어 15차례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일본 검찰심사회의 심사 건수는 매년 평균 2500건에 이른다.
현행 대검찰청 예규는 수사심의위 대상을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작년 말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의혹 관련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을 무렵 실시된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0∼70%에 이르렀다. 그만큼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사건이라는 뜻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의 경우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항소심 선고가 열리는 다음 달 12일 이후 사건을 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총장은 다음 달 13일 퇴임식을 할 예정이어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후임 총장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후임 총장이 ‘국민의 눈높이’를 존중한다면 길은 외길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