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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초대석]“한국 스포츠 발전 최대 걸림돌은 체육계 내부의 정치화”

입력 | 2024-08-25 23:09:00

스포츠행정 선진화 주장 강준호 서울대 사범대학 학장
21세기 선수에, 행정은 20세기… 한국 스포츠의 불편한 현실
개도국형 스포츠 행정 탓에… 국내 스포츠 선진화 지체
체육회장은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자리
문체부와 체육회가 미래 청사진 그려 공유하고 역할 분담해야



강준호 서울대 사범대학 학장이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스포츠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선수들은 21세기를 달리고 있는데 스포츠 행정은 20세기에 머물러 있다”고 강조하며 “스포츠계 내부의 정치화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 대한민국이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를 땄다. 역대 최다 금메달을 기록했던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대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올림픽 개막 전 대한체육회 목표치(금메달 5개)의 2배를 훌쩍 넘겼다.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로 전체 메달은 32개를 기록했다.

#2. ‘금의환향’한 대한민국 선수단은 13일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며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예정됐던 해단식이 사라진 것이다. 먼저 귀국한 김우진(양궁), 허미미(유도), 구본길(펜싱) 등도 공항을 찾았지만 결국 헛걸음이 됐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은 “선수들의 피로를 고려해 축소 진행하겠다는 뜻을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공문으로 전달했다”면서 “선수들은 좋아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파리 올림픽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명과 암을 다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 4년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안세영 작심 발언’으로 대한민국 스포츠의 민낯도 드러났다. 강준호 서울대 사범대학장(스포츠경영학)은 “이젠 선진국형 스포츠 생태계 구축을 위한 분명한 청사진을 그리고, 이를 실현할 탁월한 리더십을 확보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스포츠매니지먼트 전문가인 강 학장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 및 조직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싱가포르 국가스포츠전략 자문위원도 맡았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을 전반적으로 평가해 달라.

“메달 수로 보면 선전한 것이 맞다. 한국 스포츠의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국민들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안세영 선수는 금메달을 딴 직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배드민턴협회와 같이 갈 수 없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파리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해단식이 갑자기 취소됐다. 진종오 의원(국민의힘)이 대한체육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2개월 전 내부 검토를 통해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16개를 획득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식적으로는 왜 금메달 5개가 목표라고 발표했는지 국민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21세기의 선수와 20세기의 스포츠 행정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금메달 13개는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나.


“메달 수로만 보면 좋은 성과다. 하지만 메달 수에 가려 오히려 한국 스포츠의 현실과 문제가 묻히고 한국 스포츠가 괜찮은 것으로 국민들이 착각할까 봐 걱정이다. 현재 한국 스포츠는 일부 경기단체를 제외하면 개발도상국형 후진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수나 팀이 없어 경기력은 고사하고 뿌리부터 무너지고 있다. 사실 대한체육회 발표대로 금메달을 5개만 획득했다면 오히려 위기의식을 가지고 근본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금메달이 13개나 나왔고 ‘한국 스포츠가 아직 살아 있네’ 하고 안도하는 분위기로 넘어가는 찰나에 안 선수의 폭탄 발언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안세영 인터뷰 발언을 어떻게 봐야 하나.

“안 선수는 개인적인 문제를 토로했지만, 한국 스포츠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든 종목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에서 스포츠계는 사회(본토)로부터 고립된 외딴섬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 섬에서는 4년마다 본토를 위해 불꽃놀이(올림픽)를 해주고, 국민들은 그때만 잠깐 환호할 뿐 그것이 끝나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그 섬에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과 규범이 작동하지 않는 그 섬만의 문화와 규범이 있고, 때로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는데도 잘 개선되지 않는다. 감독과 주장의 폭언, 폭행 등 상습적인 가혹행위를 못 견디고 극단적 선택을 했던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스포츠의 문제는 무엇인가.


“스포츠시스템, 즉 스포츠 행정의 문제다. 한국 스포츠가 선진국형으로 시스템과 체질이 바뀌는 데 가장 큰 장애요인은 스포츠계 내부의 정치화다. 과거에는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은 스포츠계가 지연, 학연 등 연줄로 나뉘고 정치화됐다. 현재 스포츠계는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전국의 모든 지방체육단체장까지 모두 선거를 통해 선출하게 돼 있다. 선거는 필연적으로 정치화를 수반한다. 모든 리더를 꼭 선거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체육회장을 선거로 뽑으면 스포츠계 정치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킨다. 선진국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자리가 아니라면 위원회를 구성해 소수의 최종 후보자를 발굴한 뒤 그들의 과거 성과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검토하고 수개월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해 뽑는다. '하고 싶은'사람이 아닌 '잘 할' 사람을 뽑는 것이다.”

―대한체육회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한체육회의 회장은 한국 스포츠의 실질적 수장으로서 미래지향적 스포츠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 시대를 앞선 생각과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분이 공적으로 봉사하는 자리다. 한국 양궁의 ‘지속적인 탁월함’은 시스템과 생태계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은 정의선 대한양궁협회 회장의 리더십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한체육회장은 정부로부터 4000억 원이 넘는 국가 예산을 받아서 집행한다. 이런 자리에 걸맞은 자질과 비전,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그동안 그런 성과를 보여주었는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늘 스스로 자문하고 객관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일본은 금메달 20개로 종합 3위를 했다.

“메달 수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일본의 스포츠정책이 추구하는 가치와 긴 안목, 그리고 정책의 일관성이 부럽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종합 순위 3위를 기록하며 경기력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 저변만 튼튼하면 엘리트 스포츠는 저절로 잘될 것으로 생각하고 생활 스포츠 중심의 스포츠정책을 추진한 결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종합 순위 23위까지 추락했다. 2000년대 들어 생활 스포츠와 학원 스포츠, 엘리트 스포츠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했고, 종목별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일관되게 추진해 지금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선진국형 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했다. 일본축구협회는 일본 축구 생태계 구축을 위한 100년 구상을 내놓고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일본올림픽위원회는 경기력과 함께 ‘인간력(인격+매력)’을 강조한다.”

―이번 파리 올림픽 메달 획득 현황을 보면 양궁과 사격, 펜싱 등 종목이 다소 편중돼 있다.

“모든 종목을 다 잘할 수도 없고 잘할 필요도 없다. 스포츠는 나무와 같다. 미국, 유럽, 남미, 아시아에서 잘 자라는 나무가 다르다. 기후와 토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잘 자라는 나무가 있듯이 한국인의 기질과 특성, 그리고 현재 한국의 사회문화적 토양에서는 양궁, 사격, 펜싱, 골프라는 나무가 잘 자란 것이다. 스포츠는 그 사회의 거울과 같다. 우리가 팀 스포츠가 약한 것은 한국 사회를 반영한 것이다. 한국이 더 선진화된다면 사회의 다양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스포츠도 보다 다양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을 촉진하기 위한 중장기 스포츠 정책이 필요하다.”

―체계적인 스포츠정책이 왜 중요한가.


“나무가 뿌리, 줄기, 열매로 이루어져 있듯이, 개별 종목의 생태계는 학원 스포츠, 생활 스포츠, 엘리트 스포츠가 각각 뿌리, 줄기, 열매의 역할을 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숲이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리듯 스포츠 생태계를 만드는 데도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무가 많아지면 이산화탄소 흡수, 홍수 방지, 목재 활용, 열매 제공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것처럼, 잘 구축된 스포츠 생태계는 저절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가치를 창출한다. 스포츠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돼 가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과 사회의 건강과 행복, 사회적 결속과 활력, 의료 비용 감소와 경제 활동 연령 증가, 산업적 가치와 국가의 소프트파워 제고까지 ‘다목적 저비용 고효율’ 정책 수단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미래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역할을 분담하고 유기적 협력이 일어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문체부는 미래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 그리고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를 반영한 지속 가능한 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구체적인 청사진과 정책을 만들고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예를 들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선수단 환영식에서 안 선수 발언과 관련해 ‘낡은 관행들은 과감하게 혁신해 청년 세대의 가치관과 문화와 의식에 맞는 자유롭고 공정한 훈련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향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게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총론 차원의 백과사전식 정책 나열이 아니라 현실을 고려한 구체적이고 정교하고 전략적인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실현할 역량 있는 스포츠 행정 리더를 발굴하고 육성해 종목별로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도록 해야 한다.”



강준호 학장(57)△서울대 스포츠과학 학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미시간대 스포츠경영학 박사(PhD)
△전 코네티컷대 스포츠경영학 교수
△전 서울대 기획처장
△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 및 조직위원회 전문위원
△전 싱가포르 국가스포츠전략 국제자문위원
△IOC Olympism365위원회 위원
△서울대 사범대학 학장(스포츠경영학 교수)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