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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 재원 마련” 기업이 심은 300만 그루, 年 419억 가치 창출

입력 | 2024-08-26 03:00:00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3부 〈1〉 삶터 지키는 SK 45km² 숲
최종현 회장, 인재 키우려 숲조성… 해발 666m 올라 직원과 손수 조림
벌목 대신 지역사회 상생공간 활용
탄소저감-토사붕괴 방지 효과에… 대기 정화-수질 개선 등 역할도



드론으로 촬영한 충북 충주시 인등산 입구 모습. 민둥산이었던 인등산은 1970년대 초반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지시에 따라 숲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작나무 3만5000여 그루를 포함해 61만여 그루의 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지역 주민들의 휴식 공간, 충남대의 임업 실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충주=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장마가 주춤했던 지난달 31일 충북 충주시 산척면에 위치한 인등산을 찾았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울창한 가래나무 숲이 나타난다. 낮 최고기온이 33.7도까지 올라갔지만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에서 무성하게 자란 잎이 그늘을 만들어준 덕에 덥지 않았다. 산을 오르다 보면 자작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만날 수 있다. 인등산 가파른 비탈에 자리 잡은 지 50년이 지난 자작나무는 20∼30m 높이로 자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나무들은 지금쯤 베어져 수익화됐어야 했다. 하지만 나무는 살아남았고, 지역 대학 및 주민들과 상생하는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대기의 탄소와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토사 붕괴를 막으며 연간 400억 원이 넘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인재를 키우려 시작한 조림 사업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다”며 1970년대 초 서울 여의도 면적(약 2.9㎢)의 14배가 넘는 인등산 일대 41㎢를 인수해 숲을 가꾸도록 지시했다. 지금은 가래나무와 자작나무 숲이 무성하지만 당시는 민둥산이었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화전을 일구고 살거나 산에서 어린 나뭇가지와 낙엽도 모조리 긁어모아 땔감으로 쓰곤 했기 때문이다.

애초 최 회장은 숲을 조성한 뒤 30년이 지나면 나무를 조금씩 벌채해 장학사업의 재원으로 쓸 계획이었다. 그 때문에 빠르게 자라는 가래나무와 고급 가구 소재로 쓰이는 자작나무를 심었다.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자라고, 또 그만큼 수익을 낼 수 있기에 만약 회사 경영이 어려워져도 장학 재원은 끊기지 않게 하겠다는 계산도 했다.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1977년 3월 충북 충주 인등산에서 나무를 심고 있다. SK제공

최 회장은 당시 직원, 지역 주민들과 직접 비탈길을 오르며 숲을 조성했다. 해발 666m 정상까지 오르는 데 1시간 30분가량 걸리는 인등산은 산치고 높지 않은 편이지만 등산로가 가파르고 비탈이 많다. 그는 “조림도 공장 관리하듯 철저히 하라”고 주문했다. 이 때문에 당시 작성한 수적부(樹籍簿)에는 인등산에 심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생육 상태를 관찰한 기록이 모두 담겨 있다.

최 회장은 생전 강조했던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운다”는 인재관에 따라 일생 동안 3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 산림청은 2010년 최 회장을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하기도 했다. 기업인으로 숲의 명예전당에 오른 이는 최 회장이 처음이다.

● 황무지가 지역 상생 공간으로

인등산에 조성된 자작나무 숲 모습. 50여 년간 자란 자작나무의 키는 20∼30m가 됐다. 이 공간에서는 나무 사이 바위를 의자 삼아 강연이나 공연이 열리곤 한다. 충주=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벌목 가능한 나무 수령이 계속 상향되면서 SK 측은 인등산에 심은 나무들을 벌목하는 대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SK그룹은 2007년 인등산에 SK그룹 연수원인 수펙스센터를 짓고 2010년부터 운영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찾는 인원이 줄었음에도 지난해에만 SK그룹 임직원과 가족, 지역 주민 등 2400여 명이 연수원을 찾았다.

1992년에는 인등산 일대 10.06㎢ 규모의 산림을 충남대에 학술림으로 기증했다. 2017년 정부로부터 탄소 감축 인증을 받으면서 숲을 통해 탄소를 줄이고, 그 가치를 시장에서 내다팔 수 있게 됐다. SK는 숲을 통해 매년 1만5000㎞를 주행하는 승용차 약 2만 대가 배출하는 탄소량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숲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도 된다. SK임업은 호두과자가 유명한 충남 천안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인 100만 ㎡의 호두농장에서 약 1만 그루의 호두나무를 기르고 있고, 충북 영동에서는 송이버섯 채취 사업을 하고 있다. 모두 숲을 조성하며 가능해진 사업이다.

● 숲을 통해 1년간 만든 가치 419억 원

SK그룹의 숲 조성 사업을 맡고 있는 SK임업은 지난해 54억2300만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매출도 2022년 대비 46.9% 감소한 397억 원에 그쳤다. 하지만 SK임업은 지난해 창출해 낸 사회적 가치를 419억 원으로 계산했다. 적자를 만회하고 남을 뿐 아니라 SK임업이 거둔 매출액보다도 크다.

수백억 원 규모의 사회적 가치는 SK임업이 관리 중인 45km² 규모 숲에서 나온다. 387만9000그루의 수목이 심긴 숲에서 탄소 감축 등 대기 정화(194억 원), 대기 질 개선(2억 원), 수질 정화(73억 원), 토사 유출 방지(123억 원), 토사 붕괴 방지(21억 원) 등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20년 전 세계 숲이 가진 가치를 50조∼150조 달러(약 6경6000조∼20경6000조 원)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 전 세계 주식시장의 가치(약 100조 달러)는 물론이고 매장된 석유(약 66조 달러)나 금(약 14조 달러)의 가치보다도 큰 규모다.

손요환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숲을 살리고 국토 전반의 산림을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생산성을 높이고,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활용하는 방법 등으로 기업들이 숲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을 찾으면 지속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산불 복구하고… 우즈벡선 사막화도 막아


SK, 해외서도 산림 복원-조경

SK그룹은 국내 최초로 임업 기업인 SK임업(옛 서해개발주식회사)을 1972년에 설립했다. 충남 천안, 충북 충주 영동 등 지역에서 황무지를 매입해 숲을 조성하기로 결정했지만 숲을 조성할 투자비를 마련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조경용 나무를 키워 판매하는 양묘 사업, 사과나무를 심는 과수 사업, 양어장에서 잉어를 기르는 양어 사업, 산에서 골재를 채취하는 골재 사업 등 온갖 사업을 시도했다.

SK임업은 초창기 자금 마련에 성공하면서 50년 이상 산림 및 조경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산림 복원에도 뛰어들었다. 2011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과 시엠레아프 지역 산불 피해 지역 복구를 위해 산림청, 한국농어촌공사 등과 함께 89만 m² 규모의 땅에 나무를 심었다. 단순히 나무를 심고 끝난 것이 아니라 양묘장과 산림연구센터도 조성해 캄보디아 정부가 스스로 묘목을 길러 숲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사막화 방지를 위한 조림 사업에 참여했다. 2014년부터 나보이 지역의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자연 경관을 지키기 위해 135만 m² 규모 땅에 나무 15만 그루를 심었다. 관수시설, 저수조, 작업로 구축 등 모든 기초 작업부터 시작해야 했다. 5000m² 규모로 조성한 ‘우정의 숲’에는 2200그루의 나무를 심어 지역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2020년에는 무분별한 벌채가 진행된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의 조림 사업을 국제기구 등과 함께 진행했다. 1000만 m² 규모의 사업지에 양묘장을 조성하고 유칼립투스 등 묘목 21만 그루를 심어 산림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환경 오염 없는 커피 생산을 위해 지역 주민들과 지속 가능한 커피 농장 사업 모델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충주=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