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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금융검찰청장’보다 금감원장이 필요하다

입력 | 2024-08-26 23:18:00

박용 부국장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는 국내 이커머스 역사상 최악의 금융사고다. 이번 일로 4만8124개 업체가 1조2790억 원의 판매 대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대형 전자금융사고의 위험 신호를 사전에 감지하고도 사태를 막지 못한 금융감독 실패의 책임이 무겁다.

지난달 말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금융감독원이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 부실을 사전에 파악하고도 막지 못했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금감원이 두 회사와 경영개선협약(MOU)을 맺고도 이행 계획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복현 금감원장은 3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사과한 지 넉 달 만에 “송구하다”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금융감독 실패로 두 번 사과한 이복현

검사는 범인을 단죄하는 데 능하지만 할리우드 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설정처럼 앞으로 일어날 사건사고까지 예단하고 처벌할 순 없다. 검찰 출신 이 원장이 ‘금융검찰’처럼 검사와 제재 권한을 휘두르며 금융권을 긴장시키는 ‘메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금융사고를 예방해야 하는 감독 업무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금융권에서 “검찰 출신 금감원장이 오면 금감원의 역할이 예방적 감독보다 사후적 검사와 처벌에 쏠려 ‘금융검찰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가 두 번씩이나 감독행정 실패를 사과한 것을 보면 틀린 얘긴 아니다. 이 원장이 자신의 지위를 검사와 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금감원장보다 검사와 제재 권한을 틀어쥔 ‘금융검찰청장’으로 포지셔닝했기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원장은 역대 금감원장과 달리 지배구조, 시장 금리 등 다양한 정책 현안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긴축을 해야 할 때 금리 인하를, 금리 인하 시점에 대출 금리 인상을 유도해 시장을 왜곡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시장에선 ‘금리감독원장’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이제 와서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인상한 것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남 탓을 했다. 시장이 당국의 움직임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예측하지 못하고 개입했다면 정책 관리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는 4·10총선 이후에는 대통령실과 엇박자를 내 시장의 혼란을 키웠다. 그가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를 언급하자, 대통령실이 “금감원장의 개인적 희망”이라며 일축하는 일이 벌어졌다. 6월에는 대통령실이나 법무부 등과 사전 조율 없이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내가 해봐서 안다”며 배임죄 폐지를 꺼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시장에서는 “임기 2년을 넘긴 이 원장이 조급한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카카오페이 정보 유출 논란, 손태승 우리금융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의혹 사건은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기도 전에 언론에 흘러나갔다. 손 전 회장이 친인척 대출에 개입하고 현 경영진이 알고도 눈감아 준 것이라면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금감원장이 방송에 나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전을 펼칠 일이 아니다. 먼저 검찰과 경찰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문제가 드러나면 감독 책임이 있는 금감원까지 포함해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부동산PF-가계빚 등 본연 업무서 성과를

이 원장은 취임 초에 행동, 말 한마디까지 분석 대상이 될 정도로 금융권에서 ‘화제의 인물’이었다. 요즘은 “그가 다음 자리로 어디를 가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더 많이 들린다. 3년 임기가 끝나갈수록 더 그럴 것이다. 이 원장이 “임기 중에 꼭 해결하고 싶다”고 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나 19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등 금융감독 본연의 업무에서 차근차근 성과를 내며 남은 임기를 마쳤으면 한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