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을 증설해 옥내로 옮길 계획을 세운 한국전력공사 동서울지사 변전 시설과 전력 송수신 철탑. 뒤로 경기 하남 감일지구 아파트들이 보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한국전력이 2036년까지 송변전 설비 112건을 확충하기로 해놓고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전이 2022년 수립한 10차 송변전설비계획 추진 현황을 파악한 결과다.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송전선로를 깔고 변전소를 짓는 전력망 사업이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산업 혈관’인 전력망 구축이 늦어질수록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해 향후 15년간 발전설비는 78%, 송전설비는 64% 증설해야 한다. 그런데 동·서해안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주요 소비처인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는 데 필요한 송전망 건설 사업은 지역주민 반대와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 등으로 수년씩 지연되고 있다.
한전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동해안∼수도권을 잇는 송전선로 사업을 하면서 최종 관문인 경기 하남시 동서울변전소의 증설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이 거세게 반대하자 하남시가 최근 증설 불허 결정을 내렸다. 앞서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건설은 주민 반대와 지자체 소송 등으로 준공이 12년 6개월이나 늦춰졌다. 극심한 갈등을 부른 밀양 송전탑 사태와 5년을 허비한 삼성전자 평택공장 사례를 겪고도 나아진 게 없다.
국가 대항전이 된 첨단산업 경쟁 속에 전력망 확충 지연은 기업들에 재앙이나 다름없다. 주민 설득 등 전력망 건설 사업의 모든 과정을 한전에만 맡겨두지 말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한전 독자적으론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지자체나 관계기관 협조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은 관련법을 제정해 중앙정부가 전력망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국회도 전력망 구축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