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농증 수술 받아보니 비염 방치했더니 부비동염으로 악화 코 안에 내시경 삽입해 숨구멍 확장 이물질 사라지니 호흡 한결 수월해져
2019년 10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다.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맑은 콧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감기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열도, 몸살기도 없었다. 목이 불편해서 나오는 기침은 없었지만 가끔 재채기가 나면 콧물의 양은 더 많아졌다. 그렇게 의아해하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비염과 부비동염(축농증)이 다르다고?
콧물이 어찌나 계속해서 나던지 세수하기도, 로션을 바르기도 힘들었다. 콧물 외에는 특별히 다른 증상이 없어서 미뤄뒀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알레르기비염’이라고 했다. 생각지 못한 진단이다. “비염이요? 저는 비염을 진단받은 적이 없었는데요? 비염은 어렸을 때 생기는 거 아닌가요?”
장용주 교수·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문제는 코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코라고 말하는 콧구멍을 따라 들어가는 길 외에도 코 뒤쪽에는 공간(접형동)이 있다. 또한 미간의 커다란 공간(상악동)과 이마에 있는 공간(전두동)까지 모두 코와 연결돼 있어 염증 물질이 고일 수 있는 곳이다. 호텔의 복도를 생각하면 쉽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호텔 복도가 길게 펼쳐져 있고 양쪽에는 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다. 엘리베이터가 공기가 들어오는 콧구멍이라고 하면 호텔 복도에 생기는 염증이 비(코)염이다. 복도를 지나서 나오는 호텔방 안 빈 곳(접형동, 상악동, 전두동)들은 부비동이다. 비염이 심해지면 이 공간까지 염증 물질이 차고 부비동염(축농증)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비염 없이 부비동염만 발병하는 경우는 드물다. 비염을 앓던 사람이 만성이 되면 부비동염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물처럼 맑았던 콧물이 진득한 노란 콧물로 바뀌기 전에…
비염과 부비동염은 증상도 조금 다르다. 우선 비염으로 코 복도에 염증이 생기면 코가 막힌다. 분비물이 많이 생기고 갈 곳을 잃은 콧물은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양도 많아진다. 처음에는 맑은 물 같던 콧물이 좀 더 진행되면 부비동 안에까지 염증이 생기면서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세균이 번식하고 농처럼 누런 콧물로 변한다. 이런 염증성 콧물이 공간에 축적되면 압통으로 눈, 머리, 이가 아프기도 하다. 비염과 부비동염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비부비동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기자는 알 수 없는 맑은 콧물이 시작됐던 일주일을 그저 의아해하면서 치료의 적기를 놓쳤다.
결국 수술을 결정하고…
비부비동염 치료는 급성과 만성이 다르다. 계절성 알레르기 급성 비염은 항알레르기 제제, 점막 수축제 같은 약물로 쉽게 호전된다. 수술은 만성 부비동염 환자에게 권유한다. 이런 환자의 부비동을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찍어보면 염증으로 분비물이 가득 차 있고 점막이 매우 두꺼워져 있다. 물혹이 크게 자라서 숨구멍을 막기도 한다. 수술은 부비동에 공기가 잘 통하게 하고 고여 있는 염증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자는 4년 반을 비부비동염으로 고생했다. 이미 잦은 항생제, 스테로이드 제제 복용으로 소위 약발이 안 받는 상태였다. 한번 코가 막히면 저절로 뚫리는 일은 없었다. 반드시 혈관 수축제를 코에 넣어줘야 했다. 약 없이 견뎌보려고 하면 콧물이 쉴 새 없이 쏟아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상태로 조금 지나면 귀까지 먹먹해진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조용한 사무실에서 훌쩍거리며 콧물 삼키는 소리나 코를 풀어대는 소리는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부비동염 수술 전 기자의 모습. 생애 첫 수술의 긴장감 탓에 맥박수는 110bpm을 훌쩍 넘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이 상태로는 수술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수술대에 누우니 소름 돋는 찬기가 느껴졌다. 장 교수의 얼굴이 보였고 수술을 도울 스태프들이 여럿 보였다. 조금 안심이 되려는 찰나 마취과 의사의 “마취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부비동염 수술은 내시경으로 한다. 코안으로 내시경을 넣어서 부비동으로 이어지는 숨구멍을 넓혀주고 공기가 잘 통하도록 돕는다. 내시경으로 코안을 들여다보면서 물혹 같은 조직이 보이면 제거한다.
흔히 비염이나 부비동염 수술이라고 하면 코 성형수술을 떠올리기도 한다. 기자도 부비동염 수술을 하고 업무에 복귀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이 ‘코 모양이 그대로인데?’라는 반응이었다. 코안(비강)을 좌우로 나누는 칸막이를 비중격이라고 한다. 비중격이 휘어 있으면 비염이 발병할 수 있는데, 이때는 비중격을 바로 세우는 수술로 비염을 치료하기도 한다. 장 교수는 “비중격만곡증 수술을 하면서 환자가 원할 경우 코 성형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미용 수술로 비염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상에 간단한 수술은 없었다
눈을 뜨니 회복실이었다. 다행히 코에 특별한 통증은 없었지만 지혈을 위해 콧속에 잔뜩 넣어 놓은 솜 때문에 숨을 쉬기 힘들었다. 입원은 3일 정도 하는데 코안의 솜을 빼고 새로 집어넣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출혈을 멈추는 치료를 받는다.
코안에 이렇게 많은 솜이 들어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과거 한 연예인이 축농증 수술을 받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코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솜을 빼내는 손동작을 보여줬던 기억이 났다. 마치 마술 쇼를 하듯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표현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당해보니 코에 솜을 넣고 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혈이 어느 정도 되면 솜을 빼고 퇴원한다. 코안은 혈관이 많기 때문에 출혈을 조심해야 한다. 상처가 잘 회복되도록 격한 운동처럼 힘이 많이 들어가는 동작은 피해야 한다.
세상에 간단한 수술은 없었다. 내시경 수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뇌와 코를 구분하는 뼈는 아주 얇다. 부비동염 수술을 하다가 자칫 잘못 건드리면 뇌척수액이 새고 뇌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코안은 시신경과도 가까워서 조심해야 한다. 수술하다가 눈을 움직이는 근육이 다치면 영구 장애를 입을 수도 있다. 또한 부비동에는 혈관이 많아 심한 출혈이 유발되기도 한다. 수술로 인한 코 유착도 적지 않다. 때로는 후각 기능이 상실되기도 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과도한 절제로 코 내부 공간이 너무 커지면 ‘빈 코 증후군’이 생길 수도 있다. 장 교수는 “부비동염 수술은 생각보다 합병증이 많은 수술”이라며 “반드시 숙련된 의료진에게 치료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비염까지 치료되는 건 아니었다
수술 상처 부위가 회복되는 데는 한 달 이상 걸렸다. 하지만 코 막힘 증상은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좋아졌다. 한 번은 코안으로 공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들어와서 화들짝 놀란 적도 있었다. 숨 쉬는 구멍이 커지면서 코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량에 아직 적응을 못한 것 같았다.
보름 정도 지나고 코 세척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비물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사이 항생제, 스테로이드 제제 등의 약물을 복용하고 회복기를 지나 이제는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특이한 점은 먼지나 강한 냄새에 자극받으면 코 간지러움과 불편함이 발생하는데 과거처럼 코막힘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비염을 앓기 전에는 후각이 예민한 편이었는데 수술 후에는 예전처럼 냄새를 잘 맡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장 교수는 “부비동염 수술을 해도 비염 증상이 완전히 나아지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코안의 염증은 제거했지만 알레르기비염은 유발 원인이 있는 한 증상이 계속 나타날 수 있다. 천식 같은 전신 질환이 있거나 물혹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수술 후에도 재발 확률이 높다. 장 교수는 “부비동염 수술은 질환 관리의 시작”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평소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