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유독가스 막을 방화문… 숙박시설 “닫으면 불편” 열어둔 채 영업

입력 | 2024-08-27 03:00:00

부천호텔도 안 닫혀 피해 확산… 자동개폐장치 작동 여부 수사
호텔들 개방한 채 물건 쌓아둬
적발땐 과태료… 집행 드물어
“신고 포상제 활성화” 목소리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숙박시설 피난 계단에 세탁물 포대, 침구류 등이 쌓여 있다. 방화문을 침구류 주머니로 기대어 열어놓은 것이 보인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22일 경기 부천시 호텔 화재 참사 당시 계단 방화문이 열려 있어 유독가스가 빠르게 퍼졌을 가능성을 경찰이 수사 중이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방화문은 불길이나 연기 확산을 막기 위해 평상시 닫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6일 부천 호텔과 유사한 서울의 주요 숙박시설을 살펴본 결과 상당수가 방화문을 열어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 숙박시설 10곳 가보니, 8곳 방화문 개방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부천 화재 사망자 7명 중 5명은 사망 원인이 일산화탄소 중독, 즉 ‘유독가스’였다. 이 중 2명은 처음 불이 난 7층에서, 나머지 3명은 그 위층에서 발견됐다. 호텔 복도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화재 발생 83초 만에 연기가 복도와 피난 계단 앞을 가득 메우는 장면이 담겼다. 소방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호텔의 층간 방화문에는 자동개폐장치가 다 달려 있었다”며 “다만 몇 개가 안 닫혔는데 화재 때 망가진 것인지, 처음부터 불량이었는지는 수사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연기가 위층으로 퍼진 점을 감안하면 자동개폐장치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방화문을 열어 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99년 만들어진 건축물 방화구조 규칙은 방화문을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하거나, 화재 시 연기 발생 또는 온도 상승에 의해 자동적으로 닫히는 구조로 설치하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화문을 열어 놓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취재팀이 26일 서울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 일대 숙박시설 10곳을 돌아본 결과 8곳은 방화문이 열려 있었다. 종로구의 5층 호텔은 모든 층의 방화문이 개방된 상태였다. 문 앞에 수건 포대나 이불 포대를 쌓아둔 곳도 있었다. 중구의 한 모텔은 옷걸이와 노끈을 이용해 방화문을 열린 채로 고정시켜 놨다. 기자가 힘을 주어 닫아 보려 해도 문이 닫히지 않았다. 중구의 13층 호텔에는 방화문에 자동개폐장치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문이 끝까지 닫히지 않았다.

방화문 개방은 화재 참사로 이어진다. 지난해 12월 서울 도봉구 아파트 화재 당시 3층에서 불이 났는데 유독가스가 11층까지 올라가 주민이 숨졌다. 방화문이 모두 열려 있었던 탓이다. 2022년 경기 이천시 상가 화재 사건 때도 방화문이 열려 있었던 탓에 3층의 연기가 4층으로 번져 5명이 숨졌다.

● 적발돼도 유야무야… “신고제 활성화 필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동법 시행령에 따르면 방화문을 개방해 놓을 경우 100만 원 이상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당국은 종종 점검에 나서지만 실제 불이익 조치까지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이달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는 방화문 개방 등 위반으로 과태료 100만 원이 부과됐지만 아파트 측이 “시정하겠다”고 한 뒤 부과 조치가 유예됐다.

방화문을 열어두거나 피난 계단을 장애물로 막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신고포상제도 운영 중이지만 효과는 낮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올해 포상금 관련 예산 3000만 원 중 지난달 29일까지 집행된 금액은 735만 원뿐이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부천 화재 호텔은) 방화문이 닫혔다면 피해가 크게 줄었을 것”이라며 “모든 숙박시설에 자동개폐장치 부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영국은 2022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은 주기적으로 방화문을 점검하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다. 높이 11m가 넘는 건물은 담당자가 3개월마다 방화문, 자동개폐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2017년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로 70여 명이 사망한 뒤에는 화재안전시설 기준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2021년에는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건물주에게 징역 9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약 7400만 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경찰은 26일 호텔 업주와 명의상 업주 등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형사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생존 투숙객, 목격자, 직원 등 15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마쳤다. 소방 당국은 올해 5월 해당 호텔에 대해 ‘화재 발생 시 다수의 인명 피해 우려가 있다’는 조사서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 관계자는 “숙박시설이면 통상적으로 그렇게 적는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