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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들인 결제시스템, 활용률 고작 0.004% ‘깡통신세’…코이카 ‘캄캄이 원조사업’

입력 | 2024-08-27 14:11:00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코이카가 지원한 의료물자. (코이카 제공) 2020.6.3/뉴스1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해외 무상 원조 사업을 진행하면서 해당 국가에서 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시행할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깜깜이 원조 사업’을 시행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 대부분이 은행 계좌를 갖고 있지 않은 캄보디아에 계좌를 기반으로 한 국가지급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가 운영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도 파악됐다.

감사원이 27일 공개한 ‘공적개발 원조 정보화사업 등 추진 실태’ 감사결과보고서에는 이같은 내용이 담겼다. 감사원은 코이카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진행한 정보시스템 관련 원조 사업 총 55건에 대해 감사에 나섰다. 그 결과 감사 당시 종료된 상태였던 19건 사업 중 89%인 17건에서 시스템 활용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무상 원조를 위한 ODA 예산이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돼 지난해 4조 7000억 원 대를 기록한 만큼 현지의 사업 성과를 점검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 감사원의 시각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코이카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총 800만 달러(106억 원 수준)를 투자해 캄보디아에 국가지급 결제 시스템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했다. 국민들이 가진 은행 계좌를 기반으로 국가지급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코이카가 2020년 이 시스템을 만든 이후 2023년 8월까지 이 시스템의 활용률은 계획 대비 0.004%에 그쳤다.

실제 캄보디아 국민들은 현지 중앙은행이 개발한 모바일 기반의 결제 시스템인 ‘바콩’을 주로 이용했고, 코이카의 결제시스템은 거의 이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캄보디아는 국민 대부분이 전화기를 갖고 있고, 은행 계좌는 가지고 있지 않아 계좌 거래를 기반으로 한 코이카의 결제시스템은 애초에 거래 건수가 적어 성과가 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 감사원의 시각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캄보디아 현지 53개 은행이 ‘바콩’을 이용했고, 코이카의 시스템을 쓰는 은행은 23곳에 불과했다. 코이카는 2016년 캄보디아 현지 조사를 진행하면서 캄보디아 중앙은행이 ‘바콩’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코이카가 개발할 시스템과의 유사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코이카가 해당 국가의 법 개정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50억 원 넘는 돈을 들였던 사실도 감사 결과 드러났다. 코이카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400만 달러(53억여 원)를 들여 몽골 헌법재판소의 정보화시스템 구축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 시스템은 감사 당시인 지난해 10월까지 전혀 운영되지 못했다. 몽골은 헌법재판 처리의 모든 과정에서 구성원이 대면 참석하도록 하는 법령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헌법재판 정보화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코이카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정보화시스템 구축 작업을 그대로 진행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코이카가 사업 완료 후 성과를 측정할 지표를 제대로 설정해두지 않아 사업 활용도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코이카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총 560만 달러(74억여 원)을 들여 르완다에서 ‘ICT 혁신역량강화’ 사업을 시행했다. 그런데 코이카는 이 사업의 활용도를 비롯한 성과를 판단할 지표로 ‘센터운영 시스템 설치 여부’를 설정했다. 코이카가 설치한 이 센터운영 시스템은 주요 기능에 장애가 있어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는데도 코이카는 이 시스템을 설치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과 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평가했다.

감사원은 코이카 이사장을 상대로 “지원을 받는 국가의 경제 환경적 요인을 면밀히 조사해 예비 조사 기준을 마련하라”며 “유사 중복성을 철저히 확인한 후에 사업을 추진하는 등 예비 조사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은 외교부 장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상대로는 “공적개발원조 사업의 특수성을 반영해 산출물에 대해 기획재정부나 외부전문기관의 검토결과를 반영해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코이카는 감사원에서 충분한 예비조사 기간을 확보해 사업 발굴 단계부터 지원을 받는 국가와 충분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는 감사 결과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코이카는 감사원에서 “국내 ODA 전문가 분포로 인해 장기간 국외 출장 조사가 가능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실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