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석 국립수목원장
필자가 근무하는 국립수목원은 조선시대 왕실 부속림으로 지정된 이후 560년의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숲에 자리잡고 있다. 이 숲은 그 역사만큼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나무가 죽고 새로 자라기를 반복하며 건강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올해 3월 국립수목원의 오리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다. 일반적으로 나무가 쓰러지면 안전한 관람을 위해 베어내고 전시원에 필요한 용도로 재사용하거나, 그대로 두어 곤충과 버섯 등의 서식처로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드는 데 활용한다. 이번에 쓰러진 나무는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 있어서 안전을 위해 베어져야 할 운명이었다.
수령 121년. 나무의 나이테는 조선 말부터 광릉숲을 지켜왔노라 말하고 있다. 형태학적으로 나무줄기는 지지 역할을 하는 중심부와 물과 양분을 공급하는 외곽 부분으로 구분된다. 나무 외곽부의 절반이 연결되어 있는 걸 보고 오리나무의 생존을 기다렸다. 나무를 쓰다듬고 안부를 전하기를 두어 달. 나무에 잎이 나고 가지는 하늘로 뻗기 시작했다. 또 다른 변화도 생겨났다. 국립수목원 정원사들이 나무 주변에 작고 아담한 정원을 만든 뒤 오리나무를 ‘소원나무’라고 부르며 반려나무로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직원들의 반려나무는 그렇게 우리를 치유해 주었다. 소원나무 앞에는 방문객의 소원을 담는 둥지도 마련했다. 이곳은 치유 정원이란 입소문을 타며 요즘 방문객들 사이에서 사진 찍기 명소가 되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우울증, 조현병, 치매 환자 등 사회적 약자 4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년 동안 가드닝을 통한 정원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 한국형 정신건강 평가도구 및 생체신호 측정 결과 우울, 불안, 활력, 삶의 만족도, 두뇌 건강지수에서 효과성을 입증했다. 정신, 심리적 문제를 정원 치유로 완화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의료기관들에서 정원 치유와 같은 비약물적 치료인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을 통해 의료비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정원이 문화 활동 공간을 넘어 국민 건강 개선에 효과를 주는 치유의 장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임영석 국립수목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