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첫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당신이 고객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 중 세 번째 ‘고객은 반드시 필요해야 물건을 산다?’를 다루겠습니다.
필요해서 사게 만드는 게 아니라 소유를 갈망하게 만들어야 한다
제가 본 사례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제품 판매 사례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가장 팔기 어려운 제품과 서비스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극강의 난이도를 꼽겠습니다. 집집마다 이미 다 있고, 워낙 습관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고, 현재 사용하면서 특별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다, 고객이 제품을 사기 위한 지불의사도 낮아서 비싸게 팔기 어려운 제품입니다.
홈쇼핑 방송 / 출처=현대홈쇼핑
홈쇼핑계의 거상이자 ‘뽀뽀뽀’ 뽀미 누나로 알려진 왕영은 쇼호스트님의 전설적인 판매 사례를 가져왔어요. 매주 주말 2시간~3시간만 방송을 하면서 5년만에 1조 원 매출을 달성한, 걸어다니는 유통대기업입니다. 사진 속 장면에서 왕영은님이 무엇을 파는 것 같으세요? 예, 맞습니다. 수건을 팔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세수 수건이 없다! 타월이 없다!” 하는 분 계신가요? 없으시죠? 감히 말씀드리면, 저 수건을 파는 게 대부분의 다른 제품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저는 생각해요. 집집마다 다 충분히 있는 수건, 고객이 생각하는 가격 선은 얼마부터 시작할까요? 요즘은 공짜로 수건을 받을 일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는데, 조금만 더 옛날을 생각해 보면 아마 대부분 '0원'부터 시작할 겁니다. 수건은 돌잔치나 큰 행사 등 기념품으로 인기가 많았으니까요. 당장 집에서 수건을 찾아보시면, 수건 하단에 기념 메시지를 프린트한 게 분명히 한두 개 이상 있을 겁니다. 한 때, 수건을 돈 주고 사는 것은 사실상 거의 바보 행위에 가까웠습니다. 본가에서 독립을 하게 되거나 결혼해서 신혼집을 차리던가 혹은 이사하는 참에 대대적으로 물건을 정리하면서 갑자기 많이 필요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건을 따로 살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 수건은 그야말로 판매할 때 극한 난이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홈쇼핑에서 수건을 완판한 비결은? /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그런데 이런 수건을, 그것도 기존 수건 평균가의 거의 10배 가까운 정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왕영은님은 조기 매진으로 완판시켰습니다. 홈쇼핑 판매 특성상 많은 물량을 패키지로 묶어서 가격을 정가 대비 절반 이하로 맞춰 놓았지만, 그래도 시중의 5배 정도 되는 가격인데 말이죠. 과연 어떻게 팔았을까요?
구매 관련 부정 요인을 없애고 필요한 새로운 이유를 제시한다
기본적으로 왕영은님이 판매한 수건은 보통 수건 보다 제품의 질이 좋은 것이 사실이었어요.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으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아기를 위해서는 좋은 수건을 써야 합니다. 아기가 피부가 워낙 약하니까요. 그러면 고급 면수건 혹은 그 윗단계, 대나무 뱀부에서 추출한 실로 만든 수건을 찾게 됩니다. 예, 맞습니다. 저 비싼 수건이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단지 좋다는 이유만으로 팔 수 있었을까요?
일단 그녀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큰 문제점부터 잡아냅니다. 상품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수건의 가격이 0원부터 형성되고, 소비자들이 평소 필요성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비싼 가격에 팔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제품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물건을 살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주면서 가격 민감도를 낮춰줘야 합니다.
왕영은님은 처음에 방송 시작하자마자 5분 동안 수건 이야기를 한 마디도 안 합니다. 소위 제품 이야기를 안 했어요. 홈쇼핑을 판매 채널이나 홍보매체로 운영해보셨거나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홈쇼핑에서 5분 동안 제품 이야기를 안 하면, 그것은 이미 방송 사고예요. 끊임없이 구매욕구를 자극해서 팔아야 하는데 제품 이야기를 안하다니 말이죠. 시간당 돈인 홈쇼핑 생방송에서!
왕영은님은 대신 5분 동안 화장품 이야기를 했어요. 그것도 프리미엄급 럭셔리 화장품 이야기 밖에 안 했습니다. 그런 화장품 중 최저가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면서도 수건 패키지 가격대까지 고려해서 모 명품 브랜드의 갈색병 세럼을 언급했습니다. 아내가 남편 출장 갈 때 면세점에서 사오라고 부탁하는 탓에, 남자들도 웬만해서는 다 안다는 바로 그 제품입니다. 종종 100만원 전후의 초고급 화장품까지 언급하기는 했지만, 세럼 한 병당 15만 원에서 30만 원짜리 제품들만 쭉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고객들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15만원에서 30만원 가격대를 떠올리도록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결정타를 날립니다. 리빙제품인 수건을 뷰티제품으로 전환시켜버립니다. "피부 좋아지고 예뻐지기 위해서 그 비싸고 좋은 화장품들을 한 방울 한 방울 아껴가면서, 매일매일 열심히 얼굴에 바르면서 도대체 왜 매일매일 얼굴을 오래된 수건, 싸구려 수건으로 박박 긁어 상처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안좋은 수건으로 피부 상하게 만들고 그 위에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써봤자 효과가 떨어진다면서 말입니다. 차라리 수건을 좋은 거 쓰고 화장품 쓰는 양을 줄이면 피부가 더 좋아질 거라고 마무리합니다.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할까 생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어떻게 해야 고객이 특정 상품을 필요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까를 고민하는 것도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의 틀을 조금만 봐꿔도 현재 사업상 갖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욕구를 만들어 소유를 갈망하게 만드는 4가지 방법
여러분들이 사업자나 상품 기획자로 쓸 수 있는 방법들은, 소비자의 욕구를 만들어 소유를 갈망하게 만드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이 네 가지는 정확하게 같은 수준으로 깔끔하게 구분되지 않고, 이야기할 각 사례가 하나의 방법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누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은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욕구를 만들어 소유를 갈망하게 만들기
[1] 교체 구매, 이미 있는데 낡아서 새 것이 갖고 싶다
[2] 추가 구매, 같은 효용 혹은 비슷한 효용을 주는 게 이미 있어도 갖고 싶다
[3] 재구매, 반복구매, 이미 있지만 더 갖고 싶다
[4] 지름신 영접! 그냥 갖고 싶다
이렇게 4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네요.
교체 구매, 낡아서 바꾸고 싶다
첫 번째는 매우 일반적이에요. 대부분의 경우 여러분이 노력한다고 특별히 할 수 있는 건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체 수요이기 때문에 과거 언제 고객이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했는지, 그리고 평균적으로 그런 제품과 서비스는 언제 교체하는지가 산업과 시장 면에서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여러분들이 사업자나 상품 기획자로 신경 쓸 부분은 '팔고자 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고객, 시장에서의 교체 주기가 언제인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수요와 공급 계획을 잘 수립하는 것'입니다.
각 제품과 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주기를 보통 프로덕트 라이브 싸이클(Product Life Cycle)이라고 합니다. 제품별로 언제 많이 사는 지는 물론, 5년 주기를 가졌는지 10년 주기를 가졌는지 제품의 프로덕트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서 사업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교체 주기라는 게 가장 큰 틀이기 때문에 고객을 아무리 자극해도 왠만해서는 이 주기를 넘어서지 못하더라고요.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가 TV입니다. TV의 프로덕트 라이프 싸이클은 보통 10년으로 잡습니다. 사서 쓰기 시작해서 10년 전후가 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TV를 찾게 된다는 말입니다. TV가 등장한지 60년도 훌쩍 넘었으니 시장에 구매 주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과거 TV를 새로 살 때 어떤 이유로 새로 샀는지가 지금까지 구매 주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올림픽 기간에 TV 광고가 엄청나게 많이 보였지요? 예, 맞습니다. TV의 구매주기는 빅 스포츠 이벤트와 연관이 높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올림픽, 월드컵 등 스포츠를 생생하게 대형 TV로 보고자 할 때, 교체 수요와 맞아떨어지면서 판매가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맞춰 수요를 맞추기 위해 미리 생산을 많이해서 공급과 매출을 극대화합니다. 물 들어올 시기를 예상해서 노를 미친듯이 젓는다고나 할까요?
그렇다면 교체 구매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요?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교체 구매 주기를 줄여주면 됩니다. 그렇다면 일부러 제품과 서비스를 엉성하게 만들어서 빨리 바꾸게 만들면 되는 것이냐 물으실 수 있겠지만, 당연히 그건 아니죠. 고객 만족도를 망가뜨리면서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소탐대실이 될 테니 말이지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 중 몇몇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앞서 이야기를 나눈 TV는 어떨까요? 벌써 아득하게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지는데 십여년전 3D영화가 대유행이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바타 1편이 개봉하면서 말이죠. 영화관에서 3D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했고, 이어서 그 열풍은 안방까지 강타했습니다. TV에 3D기능을 넣어서 특수제작된 TV용 안경을 쓰면 영화관에서 보던 3D영화를 집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3D열풍이 분 몇 년간 TV는 영화를 보다 실감나게 볼 수 있는 장비로 어필하면서 교체 구매 주기와 상관없이 구매 욕구를 자극해서 꽤나 짭짤하게 팔렸습니다.
이런 예시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홈쇼핑 수건 판매 사례입니다. 프레임 전환기법으로 수건을 엄청나게 팔았던 사례였는데 그 사례의 마지막에 ‘15만 원에 20장 준다고 하는 것은 일반 수건값으로 하면 말도 안 되는데, 고급 화장품과 비교하면 이 수건은 정말 싸면서도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거예요. 더구나 수건은 1년 이상 쓸 수 있으니까요. 여담으로 수건의 사용 연한도 제시해서 향후 재구매할 수 있는 바탕까지 깝니다. 수건을 소모품으로 잘 인지하지 못하고 오래 쓰고나서 불편함을 느낄 때, 혹은 이사나 독립 등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 사게 되는 게 수건인데, 수건이 어떤 상태일 때 혹은 정해진 기간동안 사용하고 나면 바꿔야 하는지를 제시해서 고객을 설득했습니다. 여기에 공감하고 설득당한 고객이라면 꾸준히 일정 시기에 교체를 하게 될 겁니다.
추가 구매, 비슷한 거 이미 있지만 또 갖고 싶다
두 번째입니다. 같은 효용을 주는 게 있어도 더 갖고 싶게 만드는 게 있어요. 네 개의 구매 유도 방법 중에서 굳이 꼽자면 이 두 번째가 가장 강력한 수단이 아닐까 싶네요. 풀 소유로 집에 왠만한 거 다 있는 상황에서 물건을 사게 만들어야 하니 이 방법을 가장 많이 쓰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발뮤다 토스터 / 출처=발뮤다
위의 사진에 있는 제품이 무엇이지요? 예, 맞습니다. 발뮤다 토스터입니다. 발뮤다 토스터는 얼마일까요? 한 때 30만 원이 훌쩍 넘었는데 요즘에는 20만 원 후반대까지 가격이 내려갔습니다. 30만 원 전후 가격에 사이즈도 작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제품 분류는 오븐으로 분류가 됐습니다. 집집마다 오븐 없는 집이 있나요? 오븐이 있는지 없는지 물으면 없다고 생각하시거나 헷갈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에어프라이어는요?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 집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4년~5년 사이에 나온 대형 에어프라이어는 대부분 오븐 기능이 같이 있습니다. 공기 순환 기능만 끄면 오븐이 되는 거예요. 에어프라이어와 오븐 양쪽으로 쓰고 사이즈도 20리터 이상으로 큽니다. 가격도 아주 고급 제품만 아니라면 평균 10만대 중반이면 삽니다.
다시 발뮤다 토스터로 돌아가보죠. 이 제품은 크기가 작습니다. 빵을 넣으면 한 두 개밖에 안들어갑니다. 그런데, 가격은 에어프라이어 20리터짜리와 비교하면 거의 두배예요. 사이즈도 훨씬 작으니 일정 용량당 가격으로 하면 훨씬 더 비쌉니다. 기본적으로 기능이 똑같으니 이렇게만 생각하면 발뮤다 토스터기는 살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런데 주부들이 갖고 싶어하는 제품으로 결국 사게 만들었죠. 일반 제품과 같거나 유사한 효용을 주고 훨씬 더 비싸기까지 한데 말이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죠. 일단 디자인이 아주 예쁩니다. 인정해요. 고객의 감성을 건드렸어요. 더구나 그동안 쌓인 헤리티지 덕분에 명품으로 불리기까지 하구요. 하지만, 감성 터치만이 유일한 이유라면 결론이 엉뚱하게 날 수 있으니 다른 이유를 찾아보죠.
발뮤다 토스터는 '비싸게 주고도 살만한 이성적인 실체'도 제공했어요. 키 포인트가 되는 강력한 기능 하나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제품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만들고 모든 이미지를 결정합니다. 발뮤다는 한 기능을 정말 목숨 걸고 만들었다 싶을 만큼 제대로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기능을 주력 마케팅 메시지로 삼아 입소문으로 떴습니다.
발뮤다 토스터는 ‘죽은 빵도 살린다’는 핵심 메세지이자 핵심 기능을 앞세웠습니다. 조금 오래 되서 뻣뻣해졌거나 상태가 안좋지만 그렇다고 상하지 않은 빵을 ‘죽은 빵’으로 정의하고 이런 빵이 조금 과장해서 방금 구워낸 것처럼 겉은 바삭하거나 보들보들하게 만들고 속은 촉촉하게 되게끔 했습니다. 그 경험을 한 고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저 제품은 결국 주부가 갖고 싶어하는 로망이 됐어요.
다른 경우도 살펴볼까요? 역시나 집집마다 다 있지만 소비자들이 늘 신제품을 새로 사게 만드는 제품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비슷비슷한 기능의 제품들을 꾸준하게 내놓음에도 매번 대히트를 치는 제품입니다.
출처=다이슨 헤어 관리 기기
위에 있는 제품들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당장 저게 무슨 제품인지는 모른다해도 왠지 디자인이 눈에 익다 싶으면 예, 생각하고 있는 그 브랜드 맞습니다. 다이슨의 헤어 관리 기기들입니다. 남자들에게는 팬이 없는 선풍기와 청소기로 잘 알려진, 여자들에게는 헤어 관리와 스타일링 기기로 로망이 된 제품이지요.
가장 먼저 나온 다이슨 헤어 기기는 슈퍼소닉이라 부르는 헤어드라이어입니다. 머리를 말리고 필요하면 스타일링을 도와주는 제품이죠. 그런데, 다이슨은 헤어기기를 여러 종류 만듭니다. 거의 매해 신제품이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계속 제품을 출시합니다. 보통 고데기라 불리는 제품이 당연히 다이슨에도 있고요, 머리를 말리고 웨이브를 만들어주는 에어랩이라는 제품도 있습니다. 에어랩은 단봉과 장봉, 즉 짧은 봉인 것도 있고 긴 봉인 것도 있습니다.
작년말과 올해 초에 나와서 대박을 친 신제품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제품들이 다이슨을 먹여 살리는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팔리는 상황에 세계에서 큰 인기를 모은 제품입니다. 특히 흑인들과 남미계 사람들한테 엄청난 인기를 모았답니다. 너무 인기가 많아 물건을 구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돌았던 적이 있어요. 바로 다이슨 스트레이트너입니다.
이 제품은 고데기처럼 생겼는데, 열판이 아니라 뜨거운 공기로 같은 효과를 줍니다. 머리카락이 직접 열판에 닿지 않으니 머리가 타지 않게 하면서도 이름 그대로 머리카락를 쫙 펴줍니다. 번외 이야기긴 하지만 최근 슈퍼소닉의 후속 모델이 나와서 또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합습니다. 센서를 장착해서 머리와의 거리를 조절, 머리카락을 최상의 상태로 말리거나 스타일링할 수 있도록 기기의 공기 온도를 바꿔준다고 하네요.
이쯤해서 우리 차분하고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봅시다. 지금까지 언급한 다이슨 헤어기기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지요? 맞습니다. 대부분의 기기가 모두 머리를 말려주고 스타일링을 해준다는 겁니다. 각 기기가 특정 기능에 특화가 된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두 가지 기능을 모두 할 수 있습니다. 모두 같은 효용을 고객에게 제공합니다.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면 대부분의 고객은 여러 개의 다이슨 헤어기기를 살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발뮤다 토스터가 '오븐이지만 죽은 빵을 살린다'는 특정 기능으로 차별적 경쟁력을 갖추었던 것처럼, 다이슨 헤어기기들도 각각 특정상황과 목적을 구분해서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말리고 크게 스타일링할 때는 슈퍼소닉, 머리에 웨이브를 주고 싶을 때는 에어랩, 곱슬머리를 펴고 싶을 때는 스트레이트너라고 말이죠. 이를 통해 이미 비슷한 게 있지만 더 갖고 싶다고 욕구를 만들어냅니다. 파우더룸 데스크에 다이슨 헤어기기를 쭈욱 멋지게 놓고 싶단 생각을 하게 말입니다.
재구매, 이미 있지만 더 갖고 싶다
대표적인 제품으로 수집 목적의 상품들이 있습니다. 수집 목적이 무슨 말인가 싶을 거예요. 쉽게 말해서 취미활동으로 무엇인가를 모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공통적인 특성이 있어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은 ‘저걸 왜 저렇게 계속 사서 모으지?’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물건을 사는 당사자는 이건 나한테 없는 완전 새로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주변사람들은 3번 ‘재구매’로 생각하지만 당사자는 2번 ‘추가 구매’ 혹은 4번 ‘그냥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한정판 운동화를 모으는 취미를 떠올려보세요. 수십에서 수백 켤레의 운동화를 모으면서 애지중지 관리하고 전시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운동화 하면 어떤 제품으로 인식될까요? 예, 당연히 신고 다니는 신발 종류 중 하나로 특별히 운동 목적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운동화는 모으는 대상이 아니라 신고 다니는 대상인거죠. 조금 더 폭을 넓혀서 생각해본다해도 신발이라는 본질적인 존재 이유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패션 아이템 정도가 추가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보통사람들이 사용목적에 맞춰서 생각하면, 백번 이해해서 패션아이템으로 코디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도 수십에서 수백 켤레의 운동화는 상식에서 벗어납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다 같은 운동화가 수십, 수백 켤레니 말이죠. 반면에 운동화 수집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내 소중한 아이들은 하나하나 분명히 다른 제품들입니다. 운동화라는 같은 효용을 주는 제품들이기는 하지만, 생김새가 다른 걸 넘어서서 각각이 자신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독립된 효용을 가진 제품들인거죠. 유사한 다른 사례로 성인만을 위한 장난감(?)이라 불리우는 피규어 수집도 있습니다.
아악! 그냥 갖고 싶다
마지막은 사업가나 상품기획자들의 꿈이죠. 고객의 이성을 마비시켜버리고 감성적으로 다가가서 무방비 상태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제품입니다. 바로 지름신에 접신해서 그냥 갖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어내는 제품 말입니다. 바로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예, 맞습니다. 명품이 바로 그런 제품들이죠.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다만 사업적으로 PMF를 활용하거나 상품기획을 할 때 명품은 큰 도움이 안될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갑자기 우리가 명품을 만들 수는 없죠. 명품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헤리티지(Heritage)’인데 이것을 만들려면 반드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장 명품은 될 수 없어도 명품처럼 팔 수는 있습니다. 고객이 명품을 구매할 때처럼 구매 프로세스를 흉내내서 제품을 기획할 수는 있으니까요. 한 마디로 이성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감성적으로 접근해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 됩니다. 필요하지 않아도 물건을 산다는 고객의 죄책감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면서 그냥 이유없이 갖고 싶을 만큼 제품의 매력도를 높이면 됩니다. 고객 취향을 저격하는 감성적 디자인 제품들이나 소맥(소주와 맥주 혼합주) 제조기처럼 특정 기능만 특화된 제품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PMF, 지금까지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욕구를 만들어 소유를 갈망하게 만드는데 있어서 주로 2번과 3번을 많이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 같지만, 대신 1번과 4번도 수시로 검토해보기를 추천합니다. 시장과 고객의 지갑이 열리는 포인트는 언제 어떤 형태로 올 지 모르거든요.
이건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객은 필요한 걸 사는 게 아니라 갖고 싶은 걸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현재 아무리 많은 물건을 갖고 있어도 당장 지금 필요하다고 감성적으로 느끼지 못하면 물건을 많이 갖고 있지 않다고 여기는 게 고객입니다. 아무리 많이 사도 물건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PMF를 실행하는 시작점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이 공략할 포인트는 바로 이겁니다.
글 / 강재상 패스파인더넷 공동대표
삼성SDI 마켓인텔리전스팀 마케팅 전략, 현대카드/캐피탈 커머셜 브랜드 매니저와 마케팅 담당을 거쳐 두산인프라코어 APE 마케팅 파트장, ST 유니타스 스콜레 본부장과 브랜드 메이저 전략실장을 맡았습니다. Product-Market-Fit을 토대로 스타트업과 로컬 비즈니스, 대기업 사내벤처와 신사업·신제품개발팀에게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합니다. 사업과 일을 키우려는 사람을 위한 C 라운지도 운영합니다. 저서로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가 팔리지 않는 이유>, <뉴 노멀 시대, 원격 꼰대가 되지 않는 법>,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일의 기본기, 일 잘하는 사람이 지키는 99가지>를 썼습니다.
정리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